가장 행복한 순간은 놀라울 정도로 우연히 찾아온다.
내겐 홍콩을 사랑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는 내게 수년 전부터 홍콩 여행 가자고 졸라댔다. 그때 나는 홍콩의 매력 따위엔 관심 없었고 코앞에 닥친 강원도 출장이 먼저였다. 여행보다 일이 좋았다. 여행이 대수냐. 사회인 된지 얼마 안 된 그 시절, 일의 성취라는 걸 처음으로 느껴봤을 때였다. 물론 왕가위 감독이 홍콩을 배경으로 찍은 명작 <중경삼림>을 관람하기 전이었다. 그 이후 우연히 영화를 접한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누구를 골라야 할지 고민되는 막상막하 미남 배우 두 명, 현란하고 어두 컴컴한 음지스러운 무빙.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은유적 연출에 모든 장면과 대사의 의미를 찾아보게 만드는 은밀함까지. 그것은 나만 아는 인디음악을 찾아 싸이월드에 틀곤 자부심 느꼈던 중학생부터 이어져 오는 내 감성을 저격하는 영화였다. 아마 그 시절 이 영화를 알았다면 나는 분명 도토리 다섯 개와 영화를 대표하는 곡 ‘캘리포니아 드림’을 맞바꿨을 거였다.
퇴사하고 친구 따라 홍콩 갈걸. 일 년 다니고 퇴사할 회사 이익에 공헌하는 개고생 같은 거 하지 말걸. 개고생 끝에 남은 건 아직까지 그 어떤 일도 그보다 힘든 건 없다는 얄팍한 생색뿐이라는 걸 알았다면.
뒤늦게 <중경삼림>에 허우적거리던 나는 ‘캘리포니아 드림’을 들으며 주기적으로 홍콩 여행을 꿈꿨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늘길이 막힌 탓에 꿈만 나날이 부풀어갔다. 홍콩에만 가면 사랑의 유통기한이 5월 1일이었으면 좋겠다던 금성무나 미드레벨 근처 어딘가 있을 양조위의 실루엣이라도 볼 수 있을 줄 안 것 같다. 하늘길이 다시 열렸을 때, 나는 어떻게든 친구를 꿰어내 홍콩으로 유인하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리하여 2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왕가위 영화음악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기어코 함께 관람하기에 성공했고, 음악으로 인해 다시 홍콩에 매료된 친구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그래. 망설임 없이 가자던 친구의 대답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중경삼림>은 왕가위 감독이 다른 영화를 촬영하다가 기분전환할 겸 고작 23일 만에 만든 영화라고 한다. 큰 틀의 서사는 있었겠지만 촬영 당시 짜여진 대본 같은 건 없이 즉흥적인 분위기로 이어진 영화라니, 명작은 비하인드마저 아름다운 법이던가. 시간은 빠르게 흘러 벚꽃 필 무렵에 도착해있었다. 홍콩 여행의 출발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4월의 어느 이른 아침, 나는 임청하나 왕페이라도 된 듯, 영화 같은 낭만적 여행을 상상하며 홍콩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낮잠 자기 좋은 네 시간 지나 어느덧 비행기는 홍콩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낯선 여행지에 도착하니 모든 감각이 저절로 깨어났다. 영화로 홍콩을 배운 난, 공항에서 홍콩 섬까지 가는 모든 길을 보며 영화를 옮겨놓은 것 같은 오감의 설렘을 만끽했다. 도무지 어설픈 게 하나도 없었다. 모든 거리가 내가 기다려온 도시 같았다. 영화감독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홍콩을 사랑해 홍콩 여행만 세 번째라던 친구의 취향 감각에 홍콩을 도착하는 순간 설득당하고 말았다.
거리는 좁고 기다란 건물이 끝없이 즐비했다. 즐비한 건물들은 하나라도 같은 게 없었다. 자신만의 색깔과 모양이 있었다. 그 모양은 홍콩에 매료되어 여행 온 각국의 다양한 세계인들과도 닮아 있었다. 수많은 골목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홍콩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맡기 좋은 향신료 냄새. 골목과 골목을 이어주는 이국의 냄새였다.
여행 오기 전 친구는 확신에 찬 말투로 단언했었다. 너도 나처럼 홍콩을 완전히 사랑하게 될 거야. 내가 홍콩을 사랑하고 싶어 여행 오자고 한 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걸 서로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어낸 이십여 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두 번의 홍콩 여행 모두 길 잃어 시간 낭비했다던 친구였지만, 여전히 여행지를 향한 꼿꼿한 사랑은 작아질 줄 몰랐다. 그의 꼿꼿함으로부터 길을 또 잃을지언정 결국엔 행복한 여행이 될 거라는 일말의 믿음도 자라났다.
즉흥적인 분위기로 이어진 왕가위 감독의 영화적 23일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대본 없는 영화를 찍었다. 사운드 빵빵한 루프탑 바에서 감탄한 홍콩의 첫 야경, 페리를 타고 간 창저우 섬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산책한 한 시간, ‘캘리포니아 드림’을 각자 이어폰으로 들으며 올라간 미드레벨, 빅뱅의 뱅뱅뱅이 흘러나오던 란콰이퐁의 작은 펍. 침사추이에서만 길 잃은 경력 2회차인 친구가 보여준 실시간으로 또다시 길 잃어보는 경험. 길 잃고 스텝 고장나 벗겨진 신발 안으로 너무 걸어 빵꾸 난 내 양말이 드러났을 때 길 잃은 긴장에서 벗어나 후련하게 웃던 우리 둘. 그것은 기쁨의 우연이었다. 이국의 도시 한복판에서 난 친구의 꼿꼿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홍콩은 이제 우리의 공통된 취향이 되었다.
그런데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오는데도 아직까지 홍콩을 ‘완전히’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될 일상에 조바심이 난 거라 여겨봤지만 속 시원한 답은 아니었다. 마음 한편에 부족한 딱 하나의 무언가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며 친구와 완차이를 느슨하게 산책했다. 그리고 낮잠 잘 계획으로 숙소 돌아가기 전 마지막 골목을 걷던 중, 실시간 연주 소리 같다던 친구의 청각에 이끌려 낯선 식당을 들어가게 되었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우리는 환호했다. 그곳은 라이브 공연 중이었다. 우리는 상의도 필요 없다는 듯 곧바로 착석했다. 연주자의 친구로 보였던 손님은 예고 없이 연주자 손에 이끌려 즉석에서 기타 연주를 선보였다. 당황한 기색으로 그의 두 귀는 부끄러움에 벌게졌지만 몰래 짓던 설렘의 미소. 나란한 두 연주자 앞으로 등장한 막춤 추는 모녀. 서 너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의 엄마는 오로지 서로만을 바라보며 자유롭게 몸을 움직였다. 아무도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부터 풍기는 아름다움. 한낮, 솔솔 부는 바람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체감하는 사람들은 오롯이 친구와 나의 여행 풍경이 되어주고 있었다.
한 잔의 와인과 한 잔의 칵테일이 천천히 비워질 때까지 그들의 행복을 관찰했다. 마지막 한 곡만 듣고 일어서자는 친구의 말에 끄덕이고 공연에 집중했다. 그때였다. ‘몽중인’(영화 중경삼림ost) 반주가 흘러나왔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너무도 홍콩적인 음악을 우연한 순간에 라이브로 듣게 된 것이었다. 내가 기다린 딱 하나의 무언가는 그와 같은 순간이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놀라울 정도로 우연히 찾아온다는 걸 망각했었다. 행복함에 울컥한 친구의 민낯 같은 표정은 아마 그것은 내가 지은 행복의 표정과도 비슷했을 것이다. 그 순간, 지금이 여행에서 가장 기다렸던 순간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서로의 행복을 목격해 주는 일. 너의 행복을 거울삼아 나 자신의 행복을 실감하는 일.
홍콩을 ‘완전히’ 사랑하게 만든 건 미드레벨도, 청킹맨션도, 침사추이도 아니었다. 같은 날, 같은 걸 보고 감동해 눈물 글썽이고, 길 잃고도 해맑을 수 있는 나의 동행자였다. 벌써 홍콩이 그리운 오늘 밤엔 꼿꼿한 사랑과 우정의 풍경을 회상해보기로 한다.
(사진방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