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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Jun 15. 2023

할머니의 특별한 죽마고우

도봉산 터줏대감 고양이, 방울이와 할머니의 우정에 관하여

도봉산 아래 작은 골목엔 종족 불문 특별한 죽마고우가 살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나의 외조모와 고양이, 방울이입니다.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 복잡하기로 소문난 의정부 시장 골목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교통사고로 생의 기로에서 숨을 헐떡이는 황금빛 아기 고양이는 외조모로부터 발견당했습니다. 고양이라면 수차례 돌봄 경력이 있던 외조모는 그를 발견하자마자 병원으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했습니다. 그리곤 오갈 데 없어 보이는 그 조그만 생물체를 위험한 도로에 살게 할 순 없어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방울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사전적 의미론 작고 둥글게 맺힌 액체 덩어리를 뜻한다지요. 외조모께선 방울의 뜻을 알고 부르신 걸까요. 당시 정말 작고 둥글었던 방울이는 외조모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집에 눌러살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회상합니다. 외조모가 빨간 벽돌집에 살았을 적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어렸던 방울이를 강제로 품에 안고 사진 찍혔던 순간을요. 당시 나는 고양이에 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저 고양이를 소재로 한 공포영화가 많아 무섭기만 했지요. 그리하여 사춘기 시절, 할머니 댁에 머무는 건 공포였습니다. 그는 인간의 발 끄트머리의 이불을 파고들어 몸을 둥글게 말고 잠드는 걸 좋아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어떻게든 그의 표적이 되고 싶어 했겠지만, 그 시절 저는 방울이 침대로부터 가장 먼 잠자리를 사수하고, 발 안쪽까지 이불을 말고 잠에 들었었지요. 앙칼진 성격도 공포에 한몫했습니다. 군데군데 찢겨 속살이 보이는 할머니 댁 특유의 눅눅한 꽃무늬 침구가 그의 앙칼짐을 증명합니다.


성당만을 기쁨으로 여겼던 할머니의 일상에 방울이 지분이 더해졌습니다. 마구잡이로 사랑을 퍼주는 할머니의 몸엔 방울이의 앙칼진 손톱자국이 난무해져 갔습니다. 방울이로 인해 성한 곳 없는 할머니의 팔다리 생채기를 걱정하면 삼촌은 말했습니다. 얘, 엄마가 버릇을 잘못 들였어! 그러면 나의 엄마는 방울이를 노려보며 꼭 한마디 했습니다. 아니야. 얘 원래 그런 고양이야. 꾹꾹이는 몰라도 할퀴는 행위는 학습으로 교정 가능하다던데, 할머니는 방울이 학습엔 관심이 없습니다. 의정부에만 다녀오면 우리 가족의 살갗은 벌게져있었습니다. 그러는 그를 두고 할머니께서 성당에 가시는 날엔 집안을 유유히 누비는 방울의 어깨는 터줏대감처럼 솟아 있습니다.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흥. 니들은 나한테 안돼. 그 기선제압에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쌍방적인 우정을 목격했습니다. 방울이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 해를 거듭할수록 진해지던 이유가 있었지요. 매일 창문을 뛰쳐나가 외출을 즐기는 그는 동족 친구들과 놀다가도 할머니가 걱정할 무렵이 오면 알아서 귀가했습니다. 할머니의 말동무도 되어주었습니다. 방울아, 하면 야옹. 오늘 내가 무릎이 아파서 시장에 못 갔어, 해도 야옹. 어제는 이러쿵저러쿵했는데, 오늘은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어, 해도 야옹. 밥 줄까, 해도 야옹. 그의 답장은 일관된 야옹이 전부이지만 할머니가 무엇을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 주체적인 삶을 즐기는 데에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만 보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긴 합니다. 그런 그가 사랑스러워 껴안고 뽀뽀하는 할머니를 마구 할퀴다가도 잠자리에 들 때면 늘 할머니 옆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들은 상호 보완적이었습니다.


꽤 똥강아지스럽던 나와 동생이 징그러운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 방울이와 할머니의 시간은 쌓여갔습니다. 매년 두세 번씩 방문해 한밤, 두 밤 보냈던 의정부를 한 해, 한 밤씩. 그러다 두 해에 겨우 한 끼를 함께 먹는 것도 귀해졌지요. 우리 가족만을 위해 비워두었던 할머니의 거실은 웃어른 된 방울이만을 위해 쓰이게 되었습니다. 키가 큰 캣타워, 여러 개의 스크래쳐, 모래로 가득 찬 그의 넓은 화장실. 걸을 때마다 바닥에선 버적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티브이나 소파 같은, 인간을 위한 물건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의 특별한 우정은 일 년여 전부터 각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건 고양이도 마찬가지, (성질은 그대로지만) 몇 해 전부터 이곳저곳 아프더니, 본격적으로 몸이 앙상해졌습니다. 오랜만에 의정부에 갔을 땐, 그는 외조모와 함께 나란히 할머니가 되어있었지요. 묘생으로 치면 할머니보다 더 할머니가 된 방울이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예견한 그의 마음은 온전치 못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그즈음부터 할머니는 무언가를 자주 잊었습니다. 아침식사의 여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처럼 사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할머니 곁을 지키던 방울이도 쇠약해져 갔습니다.


걱정이 된 삼촌은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선 건강에 관한 염려, 가까운 이의 죽음과 같은 우울감이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하셨고, 할머니에게 치매 초기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날도 할머니는 오롯이 방울이 걱정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후, 삼촌은 방울이를 데리고 동물 병원에 방문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오래 살아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있다던 고양이에게 할머니와 같은 병명의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동거인, 삼촌은 애써 웃으며 성당 사람들의 말을 옮겼습니다. 서로 너무 사랑한 나머지 상실에 관한 두려움이 그들의 노화를 동시에 진행시킨 것 같다고요. 노화에 관해 두 노인과 우리 가족이 헤쳐갈 길은 고단하겠지만, 그들의 각별한 우정을 생각하면 마음 벌렁거리는 감각이 마냥 서글프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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