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편세권과 공포의 편세권, 한 끗 차이
집 앞 편의점이 한 달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내가 학생일 때부터 있었으니 족히 열 살은 넘은 가게다. 오래된 동네만큼이나 낡아진 편의점이 새 단장을 한다니 조금 설렜다. 당시 동네에 처음 생긴 편의점이었다. 이제는 온갖 브랜드의 편의점이 즐비하지만 처음 지어질 때만 해도 사람들은 모두 의아함을 내비쳤다. 구멍가게 정도 있을 것 같은 누추한 시골에 웬 귀인이 오냐는 듯한 반응. 공사 중인 편의점을 지날 때마다 저마다 상기된 표정을 띠었다. 밤 여덟 시면 문 닫는 동네 슈퍼도 이제 안녕이다. 슈퍼의 예고 없는 휴일에 당황하는 마음도 청산이다. 그 마음은 당시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신조어, 편세권(편의점 생활권)이라는 자랑으론 부족하다. 그 정도로 24시간 내내 불 켜진 동네 최초의 편의점은 요즘의 스세권(스타벅스 생활권) 부럽지 않은 동네 자랑이었다.
일 년 전, 편의점과 오분 거리에 위치한 본가로부터 독립해 편의점 바로 뒤 건물로 이사 왔다. 밤 아홉 시, 어느 동네는 거리의 네온사인이 켜지는 시간, 하루를 시작할지도 모르는 시간. 아홉 시의 우리 동네는 편의점을 빼면 곳곳이 깜깜하다. 그러니 흉흉한 세상, 본가와 가까이 산다고 부모님이 매일 내 옆을 지켜줄 수도 없는 노릇. 편의점의 백색 불빛은 내게 안전의 불빛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다. 험악하게 들리는 개 짖는 소리, 으스스해 보이는 고양이 밝은 두 눈빛 견디며 어둡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면 언제나 열려있는 편의점에 안심이 되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편의점을 내 맘대로 안전장치 삼은 이유엔 한자리를 십 년간 지키는 사장님의 존재도 한몫했다. 특별한 대화 한마디 나누어 본 적 없지만 그는 편의점 만큼이나 내게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다.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한 신뢰감과 듬직함. 한 번의 흐트러짐 없는 인자한 미소도 모두에게 평등했다. 가게를 우당탕탕 휘젓는 초등학생에게도 그랬고, 무례한 주취자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말없이 지켜주는 그 가게의 두 번째 완공을. 어느새 가게는 헌것이었다가 부서졌다가 텅 비었다가 어느 날 보니 다시 새것이 되어있었다. 내부를 밝히는 조명은 전보다 개수가 많아진 듯 빼곡히 채워진 매대를 환하게 밝혔다. 주류 코너는 더 넓어졌다. 지저분하던 테이블도 깨끗해졌다. 커피 자판기도 생겼다.
그런데 계산대를 지키고 있어야 할 사장님 대신 그 자리엔 조만간 레이저를 쏠 것 같은 이글아이 이종수의 강렬한 눈빛을 가진 사나이가 지키고 있었다. 인자한 사장님은 며칠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십 년 전 편의점이 처음 생길 때보다 더 당황했다. 차마 강렬한 눈빛을 마주하고 질문할 자신은 없었다. 뒤늦게 부모님을 통해 사장님이 가게를 팔고 다른 도시로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게는 그 계기로 새단장을 한 거였다. 마냥 좋아할 게 아니었다. 돌이켜보니 의심 한번 안 한 사실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너무 오래 지켜온 자리라 주인이 바뀌는 것조차 상상을 못 했었나 보다. 마지막 인사를 못한 게 섭섭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사장님은 영화에서 주로 범인이나 형사 배역의 배우, 정만식을 닮았다. 그런 그는 나뿐 아니라 편의점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부담스러운 친절맨이었다. 서비스 정신이 너무나도 투철한 나머지 때로는 무서움을 선사할 정도였다. 매대를 돌며 물건을 고르는 동안 불타는 눈빛이 나를 주시하는 게 느껴질 정도. 그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는 곧장 달려와 어떤 걸 찾느냐고 묻는다. 그렇게 고른 물건을 계산하는 동안 계산대 옆 미니 주류 코너에 잠깐이라도 시선을 두면 판매 실적 올려 성과급을 받는 매장 직원처럼 주류를 영업하는 식이었다. 집에 놀러 오는 친구들도 한 마디씩 했다. 사장님 원래 그렇게 친절하시냐고. 그는 내가 신선식품 코너를 기웃거리면 쫓아와 새로 입고된 밀키트까지 추천했다. 심지어 주종을 묻거나 매운 걸 좋아하는지 식성에 대한 맞춤 인터뷰도 당했다.
함부로 사람을 의심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과도한 친절함은 간간이 공포를 주기도 했다. 불타는 눈빛 때문이었을지도, 너무 젠틀한 말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도 있을 거다. 범죄 영화에선 가장 친절한 사람이 범인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게다가 내 집은 바로 뒤 건물이었으니, 한동안 그 친절한 사장님이 우리 집이 어느 쪽인지 관심 없길 바랄 정도였다.
자랑이었던 편세권은 공포의 편세권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편의점을 피하게 되었고 되도록 조금 걸어야 갈 수 있는 다른 편의점을 이용했다. 아르바이트 생의 근무 시간을 추측해 그 시간만 노렸다. 어쩌다 사장님과 만나면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대화라도 하게 되면 나는 너를 절대 경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이 반기지도 않는다는 식의 한결같은 톤을 유지했다.
힘주어 덥기만 하던 여름 지나 선선한 가을이 왔고, 나는 여전히 편의점에 대한 혼자만의 고군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편의점에 찾아간 날, 사장님은 등 돌려 음료 정리를 하고 있어 손님이 왔다는 걸 보지 못한 듯했다. 다른 때와 달리 편하게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 앞에서 사장님을 기다렸다. 분주한 뒷모습의 그는 손님의 인기척도 못 느낀 것처럼 보였다. 경계를 조금 풀고, 사장님, 사장님! 하고 불러도 뒷모습은 계속 분주했다. 하는 수없이 음료 냉장고에 가까이 걸어가 그를 불러도 답이 없어 어깨를 살짝 노크했다. 그는 그제야 놀란 듯 나를 돌아보곤 다시 내가 알던 친절맨이 되어 계산을 도왔다.
이상했다. 몇 달간 지켜본 그는 사소한 오류도 없던 사람이었다. 손님의 입장과 동시에 늘 손님 주위를 배회하던 친절맨이 실수할 리 없었다. 단지 운영에 적응해 초심을 잃은 것일까? 나는 티 나지 않게 계산해 주는 그를 힐끔힐끔 봤다. 그때 내 시야에 걸린 건 그의 귀에 끼워진 공기 돌만한 작은 물체. 순간적인 촉이 발동했다. 그가 듣고 있는 건 음악이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불안한 생각. 스치듯 사진으로만 본 어느 노인의 보청기와 비슷하게 생긴 작은 물체.
며칠 후 다시 간 편의점 계산대엔 못 보던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크게 말씀해 주시면 더 잘 들립니다. 불러도 오지 않으면 매장 어딘가에 있을 저를 찾아 살짝 터치해 주세요. ^^
친절한 서체에 친절한 문장이었다. 푯말을 읽고 계산대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영화에선 범인이 어쩌니, 공포의 편세권이니 뭐니 하며 순수하게 친절한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었다. 지난 몇 달간의 내 무례함에 나 자신이 수치스러워졌다. 호의를 앞세워 범죄를 일으키기는커녕 그는 언제나 잘 들을 수 있도록 모든 손님을 관찰한 거였다. 귀 대신 눈을 기울인 거였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보청기를 착용하고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 그의 심정은 어땠을지, 작은 것 하나 헤아리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퉁명스럽고 쌀쌀맞은 못된 마음을 가진 손님은 고개를 들어 사장님에게 미소를 지어보는 수밖에. 그는 눈주름을 겹치며 웃어주었다. 이글아이처럼 불타는,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무렴 괜찮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