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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Apr 22. 2023

피아노 선생님이 가르쳐준 인생의 정의, 고독의 도미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읽으며, 피아노와 삶의 태도를 배우다.

딴짓을 잘합니다. 딴생각도 잘합니다. 타인과 함께일 땐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모으지만 혼자 있을 때의 저는 종종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딴생각으로 무아지경 상태가 되어버리곤 합니다. 침묵. 침묵과 동시에 나는 여러 모양의 나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요즘 하는 딴짓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일입니다. 두 달간 열 번의 레슨과 언제나 연습실을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을 구매했습니다. 짧은 기간인 만큼 선생님 한 분의 방식에 길들여지고 싶었던 바램은 세 번째 수업에서 무너졌습니다. 대학교 개강과 동시에 학업에 전념해야 하는 선생님과 작별하고, 작곡과 밴드 무대 경력이 있는 두 번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두 번째 선생님에겐 네 번의 수업을 받았습니다. 돌연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신 두 번째 선생님과 예기치 못한 작별을 하곤,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마음을 둥둥 떠다녔습니다. 결국 세 번째 선생님과의 남아있는 두 번의 수업을 시작하기 전 학원을 잠시 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저 취미로 배우는 악기에 너무 진지했던 탓일까요. 잦은 변화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나 봅니다. 몰입의 대상이 피아노였는지,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였는지, 피아노 배우는 나였는지는 모를 일입니다만, 아무튼 혼자 있는 내내 선생님의 연주를 떠올렸습니다. 그의 화려한 재즈식 연주를 감상하고 있노라면 수업 시간을 날로 먹는 느낌과 동시에 망설임 없는 손가락에 매료되곤 했습니다. 어떤 곡도 코드만 캐치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꿔 연주하던 그 즉석 감각은 언젠가 수업 중 ‘재즈는 틀렸다는 개념이 없다’는 그의 말을 오롯이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선 재즈 자리에 내 맘대로 ‘인생’을 넣어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지요. 어떤 인생도 틀린 건 없다고요.  


그의 말에 따르면, 도레미파솔라시도엔 각각의 코드가 있습니다. 도미솔은 하나의 다이아토닉. 도(C코드)의 가족은 도미솔이고요. 도’레’솔일 경우엔 ‘레’는 이방인이 됩니다. 도미솔과 도’레’솔을 듣고 있으면, 후자를 들을 땐 뭔가 틀렸다는 불안의 신호가 느껴집니다. 그러나 다시 그의 말에 따르면, ‘레’는 이방인이지만 그것이 틀린 연주는 아니라고 합니다. 음악을 배운 사람이라면 별 감흥 없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이론이 자꾸만 딴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사회 규범 같은 인생의 목차는 늘 ‘도미솔’처럼 살아야 한다는 집념을 심어주었습니다. 십 대는 무엇무엇을 해야 하고, 이십 대는 무엇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삼십 대는 무엇무엇을 알아야 하는 ‘도미솔’같은 삶. 나는 가끔 ‘도레솔’이 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도미솔’이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도미솔’이 아닌 길을 선택하는 건(혹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다수의 이방인 취급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타의에 의해 이방인이 되는 일은 마음이 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딴생각에 빠지는 일(고독을 자처하는 일)도 ‘도레솔’의 면모 중 하나라지요. 고독을 즐긴다는 것을 마음껏 내보였다간 ‘도미솔’로부터 고독한 이방인으로 낙인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며 첫 페이지를 펼친 책이 있습니다. 미셸 슈나이더 감독이 쓴 피아니스트 굴렌 굴드의 전기물입니다. 그는 고독을 벗 삼았으며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아있는 그의 글은 친구인 키케로에게 보낸 편지가 전부입니다. 그런 그는 어느 날 고독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보다
사람이 더 활동적인 순간은 없으며,
고독 속에서 만큼이나
혼자가 아닌 순간도 없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32쪽

그는 독특했습니다. 잘 나가던 시절 돌연 무대를 떠나 오로지 영상과 녹음으로만 연주를 선보이는 것으로 시작해, 건강을 심하게 염려했던 탓에 한여름에도 한겨울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비서와도 전화로 소통을 했다지요. 그의 독특함은 지독하게 혼자이기를 열망하는 것으로부터 더 잘 드러납니다. 어느 날엔 자신의 아파트 문에서 문패를 떼어내기도 했고, 가명을 사용하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나는 자기 자신(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 이방인이고 싶어 하는 굴드를 발견했습니다.


이방인. 이것은 침묵하며 무아지경으로 딴생각하는 나이기도 합니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여러 모양의 나와 공존합니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고독 속에서 나는 다양한 나를 만납니다. 그리고 모든 나를 수용하려고 노력합니다. ‘도미솔’적인 맑고 바른 도덕의 나를 수용하는 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문제는 ‘도레솔’적인 나입니다. 특히 자기혐오적인 나와 나르시스적인 나를 수용하는 일은 두통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쓸어 담을 수 없는 과거의 나의 말과 글과 생각을 소환하고 싫어져 버린 나를 샅샅이 궁금해하고, 이해해 주고, 보살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와 멀어지는 동시에 일치함을 인정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도미솔’과 ‘도레솔’인 나와 나의 균형을 맞추는 일입니다.


피아노를 쉬는 동안 문패를 떼어냈던 굴드처럼 지냈습니다. 굴드의 고독은 찢김이 아니고 스스로 아무는 상처(20쪽)라던 미셸 슈나이더의 말처럼, ‘도레솔’적인 나와 동고동락하며 상실로 괴롭던 마음도 일부 회복했습니다. 상실의 범인도 찾았습니다. ‘도미솔’ 같은 올바름을 지향하면서도 ‘도레솔’처럼 하나씩 틀리고 싶은 마음, 남들이 향하지 않는 쪽으로 동하는 마음, 자꾸만 ‘도레솔’로 향하는 내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몰입했던 건 ‘재즈는 틀렸다는 개념이 없다’ 던 선생님의 주문 같은 말이었습니다.  


어느덧 굴드의 생애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재등록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우선 ‘도레솔’로 연주회 데뷔라도 하고 싶은 비장한 마음은 숨 좀 죽여야겠습니다. 이 시절의 내가 ‘도미솔’인지, ‘도레솔’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이방인이고자 했던 굴드에게서 고독의 ‘도미솔’을 배웁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밤 속으로 침몰하지 않기 위해 완강히 저항하면서, 절망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이 침묵의 순간이 닥치기를(18쪽)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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