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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Jul 09. 2023

환대받고, 환대하는 삶

송지현 <동해 생활>을 읽고, 친구에게 휴가 갔던 주말을 떠올리다.

멀리 사는 친구가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친구가 사는 도시에 도착하는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얼마 없는 휴일을, 마음먹고 떠나는 여행을 만족할 만큼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이 종료된다. 그러니까 그 말은 ‘OO(도시 이름) 가볼 만한 곳’ 같은 걸 검색하지 않아도 되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고르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오직 하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고 즉흥적인 이야기를 하자. 그것만이 여행의 오직 한 가지 계획이 된다.


6월에 어느 주말은 충북에 사는 친구에게 갔다. 자동차로는 1시간 조금 넘는 거리, 그러나 내게 주어진 교통수단은 오로지 버스 하나였다. 집에서 남부터미널로, 남부터미널에서 충북까지 총 3시간가량 소요되는 거리. 오직 자신을 만나러 도시를 건너 하룻밤을 소진할 계획을 가진 친구를 맞이한다는 건, 집에 자고 가는 손님을 받아본 적 있는 내게도 준비할 것이 여간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당시 나는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었고, 어떤 일이 내게 환기를 가져다주었는지 잊어버린 상태였다. 매일 내가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하며 즐거운지, 아닌지 체크했다. 이를테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자극적인 영상만 보거나, 잠만 자거나, 사람들을 연속해서 만났다. 그럴수록 원인 모를 화만 쌓여갔고 내가 유영하는 모든 게 지긋했다. 무엇이 나를 과거의 희망적인 나로 돌려놓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보는 곳으로 여행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타인과 출발부터 도착까지 함께 할 용기는 없었다. 서로의 기분과 시간을 헤아리고, 모든 걸 두 사람이상의 만족스러운 의견으로 조율하기엔 나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조차 헷갈렸기 때문이었다. 혼자 출발했다가 혼자 돌아오되 반가운 누군가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옷 한 벌 챙겨 버스에 탄 것이었다.


충북 혁신도시 터미널은 친구가 이사 간지 얼마 안 된, 일 년 전에도 와봤었다. 한 번 와봤다고 눈에 익은 터미널에서 나는, 사람도 건물도 모두 깨끗한 도시의 시작을 둘러보았다. 피아노와 게임기가 세팅된 친구 집 손님방에 가벼운 짐가방을 내려놓았다. 바닥엔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매트리스와 부드러운 침구류가 나를 위해 깔려있었다. 환대받는 마음이 쑥스러워졌다.


바스락거리는 촉감보다 부드러운 촉감을 더 선호한다는 친구가 꺼내준 침구들.


친구 부부, 아이 둘과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볼링을 쳤다. 깔깔거리며 노래방도 갔다. 자정쯤 돌아와 여덟 살 된 막내딸과 인형놀이도 했다. 야식으로 빙수를 배달시켰고 <미스터 선샤인>에 뒤늦게 빠져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드라마를 반강제 시청하다 잠에 들었다. 아침엔 이모(나)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린 막내딸 방에 소환당해 인형놀이를 이어가다 짬뽕으로 해장했다. 오랜만에 피아노도 두들겼다. 네일아트 배우는 친구에게 손톱 관리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집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탈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친구는 피아노 전공자였다. 취미로 피아노 배웠던 내가 이 집에 여행 오겠다고 결심한 이유엔 ‘피아노 소유’가 한몫했다.


아이들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고 버스 터미널까지 앞장선 친구를 따라 뛰었다. 겨우 출발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우당탕탕 버스에 탑승하는 찰나를 이용해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곧바로 출발했다. 친구도 숨을 고르고 집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옆자리엔 친구에게 증정받은 분홍색 캐리어가 함께했다. 친구가 어디선가 증정받아온 캐리어였다. 그 안엔 친구가 챙겨준 베트남 출신 차(tea)와 커피 원두도 들어있었다. 나를 버스에 무사히 태우겠다는 친구의 뜀박질과 버스 창밖에 서있던, 이제는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의 모습이 겹쳤다. 어쩐지 삶이 조금 안심되었다. 부끄럽게도 버스에서 조금 울었다. 잠옷 한 벌 가져왔을 뿐인데 무척 환기한 기분으로 귀가를 했다.  


여행에 관한 책을 여행 내내 읽어서 더 울었는지도 모른다.




충북에 다녀오고 얼마 후, 또 다른 친구가 내게 송지현 <동해 생활>을 읽어보기를 추천했다. 그때 우린 바다 가까운 동네에 얼마간 살아 보고 싶다는 소망을동시에 품고 있었다. <동해 생활>은 ‘얼마간’을 넘어 아예 이사 가고 싶다는 내게 친구가 추천한 책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중고로 구매한 책이 집으로도 착했다.  



책은 더 편하게 울고 웃고 싶어, 동해에 있는 아파트를 떠올리게 된(21p) 저자가 계절이 여러 번 바뀔 동안 동해에 머무르는 이야기다. 그는 동해에 살면서 놀고 일하며, 친구를 맞이하고 보내고 사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동해에서의 일상은 서울에서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현재를 살게 하는 휴가의 수단이 된다. 한편으론 그저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사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가 동해에 사는 동안 머물다 간 친구 박상영, 백은선 작가는 추천의 말에 각각 이렇게 썼다.


이미 다녀온 적 있는 동해였음에도
마치 고향에 왔다가
떠나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송지현 <동해 생활> 277p


마음속에 바다 하나쯤 품고 있는 절친이,
바로 동해에 살고 있기를 바란다면,
그런 천국 같은 곳이 그립다면
여러분은 지금 <동해 생활>을 읽어야만 할 거야.
송지현 <동해 생활> 286p


친구를 만나려고 떠나는 나와, 친구를 맞이할 만큼 먼 거리로 떠나고 싶은 내가 공존한다. 충북에서 나를 맞이해 준 친구와, 떠나고 싶은 내 마음을 헤아려 책을 추천해 준 친구들 곁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꼭 바다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눈을 뜨면 매일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108p) 소망은 여전하다. 환대받고, 환대하는 삶 안에서 환대를 그리워하다 안심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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