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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연 Jun 20. 2024

내가 방심한 것들

떠나온 도시, 자라온 도시, 세월의 거대함

걷기에 알맞은 햇살과 그늘, 알맞은 바람이 불던 오늘 나는 내가 자라온 도시에 있었습니다. 티셔츠 하나만 입어도 쌀쌀하지 않은 오전 열한 시, 수백 번은 더 걸어본 경안천 산책로를 오랜만에 걸었습니다. 나는 나를 키운 여자와 그녀를 키운 여자 뒤를 따라 걷습니다. 나를 키운 남자는 그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지요. 얕은 강이 흐르는 부산스러운 물소리와 바람이 고요히 부는 소리, 낮게 핀 민들레와 무성하게 자라난 초록 들이 봄의 한가운데를 설명합니다.


할머니는 평생 의정부에만 살았습니다. 동고동락하던 고양이들, 명절에 늘 씨름 방송이 틀어져 있던 조그만 티브이, 꼬릿한 향이 나던 나물 반찬, 장가 안 간 오십 대 아들을 두고 이곳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직장에 가 있는 사이 갑작스레 쓰러진 탓에 이 도시로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깨어나 보니 영문도 모른 채 낯선 도시에 와있던 것이었겠지요. 도시에 처음 온 며칠은 내내 아팠습니다. 평생 뒤치다꺼리만 한 탓에 몰려온 피로감이었는지 구급차로 실려간 응급실에선 모두 지겹다며 고양이도 아들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두 발로 성당이며 시장이며 쏘다녔던 그녀는 이제 혼자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치매라는 게 기억만 잃으면 다게요. 뇌가 걷는 기능마저 퇴화시켜 버린다는데.


치매 노인 돌보는 일을 태어나 처음 겪는 삼촌에게 이 불가항력적인 현실은 혼자서 감당하기엔 도저히 벅찬 일이지만, 십 년 전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친할머니를 돌본 경력이 있는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돌발행동에 당황하지 않습니다. 방금 밥을 먹고도 배고프다고 하거나, 자신이 기른 자식에게 존댓말 하는 것쯤이야.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이미 고인이라고 생각하며 엉엉 우는 노인 앞에서도 꽃이 예쁘게 폈다며 싱글벙글 말만 잘 거는걸요. 울컥울컥 치미는 눈물을 차마 밖으로 나오게 할 수는 없어 서로의 눈가가 벌게지는 걸 보고도 모른척하는 데에도 도사가 되었지요.


그러다 한 번씩 우리 딸, 우리 사위, 우리 지연이라고 불러줄 때면 아직은 우리를 까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치매의 진행 정도를 가늠해 보곤 했습니다. 십오 년간 함께 고양이도, 오십 년간 길러온 아들도 안 봐도 되니, 딸 집에 가서 같이 살고 싶다고 보채는 걸 달래고 요양소를 빠져나와야 했던 날에도 어영부영 참아 왔었는데요. 쓸쓸하다며 그렁그렁 해진 눈을 보고 있자니, 지금껏 나름 돌발사건에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던 우리 가족도 당황해 잠시 할 말을 찾느라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영영 의정부를 못 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이삿짐 트럭을 두 대나 불러 이 도시를 떠났던 작년 겨울을 돌이켜봅니다. 매일매일이 모두 같은 하루처럼 느껴져 그 권태를 견디지 못해 나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수십 번 새 마음으로 퇴고를 하는데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 기분 속에서 시간 낭비하는 듯했었지요. 결국 다른 도시로 주소지를 옮기고, 기꺼이 다른 일을 하는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헤어스타일도 바꾸며 낡고 닳았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을 새것으로 채워나가기로 했었습니다. 다 모험심에서 출발한 일들이었지요.


그러니까 그저 여행자의 가벼운 마음으로 초고를 쓰듯 두서없는 삶을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의 오랜 시절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체감했습니다. 모험처럼 신기하고 흥미롭던 처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비로소 여행이 아닌 삶이라는 것이 실감 나버린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데 모든 체력을 다 쓰고 집에 돌아오면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체력은 이미 바닥나 있었고, 나의 한계를 시험하듯 오늘 하루 중 ‘진짜’ 즐거웠던 순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던 밤엔 권태로움 때문에 괴로웠던 지난날을 괜히 따져보다 잠들곤 했습니다.


응석 부릴 수도 없습니다. 가진 체력을 모두 소진하기, 그리하여 마음껏 긴장하기, 초고를 쓰듯 매일 새로운 하루를 보내는 것을 바라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매일 달라지는 하루를 직면하고 보니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들이 있는 것처럼 자꾸만 이 도시가 눈에 밟혔습니다. 그게 무엇이길래 바라던 삶을 살면서도 매일 한계점에 도달하고 마는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오늘 할머니는 이 도시에 온 이후 처음으로 의정부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고양이를 안고 뽀뽀해야겠다고, 까탈스럽기만 한 아들이지만 우리 집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걱정된다고요. 매일 볼 수 없어 쓸쓸하다고 했습니다. 한 달 전 할머니가 몇 번이나 응급실에 들락거렸던 건 오랜 세월과 노동의 피로감도, 지겨움도 아닌 평생의 세월을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의 몸살이었습니다. 발 묶인 휠체어에 앉아 쓸쓸하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가 이 도시에 두고 온 세월의 넉넉하다 못해 거대한 크기를 간과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책 후 요양소 안에서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본가로 돌아와 엄마가 깎아주는 참외를 뭉그적거리며 받아먹습니다. 아침마다 알람을 꺼가며 기상 시간을 늦췄듯 본가를 나서기를 미루다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버스에 탑승합니다. 올해 휴가는 반드시 이곳으로 오리라 다짐하며 단잠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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