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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11. 2022

본인이 드신 건 좀 담가 둡시다.

인간적으로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자. 엄마가 안 가르쳐주셨니?

잘 드셨구랴.

얼결에 엄마가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육아템(?)의 세계에 발을 디뎠고

첫 아이 때는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중고차를 하나 뽑고도 남을,

머나먼 북유럽 출신 유모차를 6개월 할부로 사기도 했다.

아이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었다. 

아니, 뭐든 해주고 싶었다.


숨풍 낳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대체 뭘 믿고?)

자연분만을 넘어 (아무 준비도 없이) 자연주의 출산(당시 그게 유행이었다)까지 넘보며

가족분만실(?)에서 17시간 낑낑거리며 진통하다

아이 심박수가 빠르다는 전문의 말쌈에 

응급 제왕으로 첫 아이를 만났다.


전신마취로 기절해있던 나는 몰랐지만

친정엄마는 

아이를 낳고도 산모와 아이를 보여주지 않아

(1시간인지 2시간인지만에) 아이를 보여줄 때까지

애간장을 녹였다고 했다.


눈을 뜨자

퉁퉁 불은 쭈글쭈글한, 모자 쓴 아이를 보여주었다.

아가야, 반갑다. 드디어 우리 만났구나. 


아이와 산모를 확인(?)한 엄마는 나의 시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귀가하려고 했고,

친정엄마가 집에 간다는 소리에

시어머니는 "그럼 제가 병원에 있겠다"라고 했단다.

이때 남편이 "그럼 00이 못 쉬잖아"라고 막아주어

시어머니는 귀가하셨다고 나중에 동생에게 들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편이 나의 편(?)이 되어주었던 순간인데

직접 듣지 못해 아쉽다. 


진통은 진통대로 하다 응급수술을 했기 때문일까. 

열이 떨어지지 않아 통상 제왕절개보다 1박 2일 더 병원에 있었고, 

계속 수액을 달고 있었다. 

철분 수치가 모자란다고 진짜 피 같은 시뻘건 링거도 맞았다.


시어머니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2번인가 더 찾아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과 외식을 하고 귀가하셨다. 

 

그때는 내 몸이 좋지 않았고,

또 당연히 샘솟으리라 믿었던 모유가 짜도 짜도 방울로 떨어져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괴로웠던 때라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데,

친구들과 동생의 출산을 보며 

시어머니의 야박함(이를테면, 산후조리하라며 엄청 귀하다는 '00도 미역'을 주시고, 

한 달 만에 신생아와 내 집으로 돌아온 산모에게  찾아와 본인 밥상을 차리게 했다거나)을 알게 되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에도 친정엄마의 집에서 조리를 할 때에도

찾아오셔 거금 30만 원을 내 몸조리해주는 친정엄마에게 주라며 돌아가셨다.


결혼할 때부터 가풍(?)은 눈치챘지만,

살면서 남편의 행동을 보며 시어머니가 생각날 때가 종종 있다. 


밥 먹을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요리해서 혼자 먹을 때,

아이들 밥은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는 자기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술과 안주를 벗 삼아. 

(물론 남편이 음식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때도 먹이는 건 그의 몫이 아니다.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에는 그 옆에서 함께 해야 한다는 건 나만의 생각인가.)


아이들 밥은 왜 엄마의 몫일까. 

엄마 아빠가 낳았으니 둘이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화장실에는 왜 그리 자주 들어가 오래 앉아있는 것인가. 

화장실에 꿀이라도 발라둔 것인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부디 항문 건강을 챙기길 바랄 뿐이다. 

그러다 큰일 날라. 


나는 왜 당사자에게는 뭐라 말하지 못하고 

누가 엿볼까 두려워(?)하며 

나를 아는 사람은 읽지 말기를 바라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것일까. 


그건, 

일단 말하면 싸움이 된다. 

약 3년간의 신혼 대전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자자, 아직 3년 안된 신혼(?) 부부 있다면 귀를 여시라. 

말해봤자 싸움만 된다. 

정말 피 터지게 싸우면서

사네 마네, 이혼 서류를 사직서처럼 썼다 찢었다 하며

실전 임상을 통해 건드리면 안 되는 구역(?)들을 알게 되었고,

(그게 대부분이라는 게 문제다. 대체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아마 상대도 똑같이 느끼리라.)


해봤자 기운만 빠지고 

기분만 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대충 넘어가는 것이 최고다.

상대가 왜 그러는지 알고 싶다고? 됐다, '왜'라는 건 논문을 쓰거나 지구를 구해야 할 때 써야 할 질문이다.

결혼생활에서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적어도 내게는. 

일단 내가 아닌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자기만의 룰과 곤조가 있다.

적당한 거리와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건 저것들 같다. 


그러자니 미치고 팔짝 뛰겠어서

여기 이렇게 나만의 대나무 숲을 만들어

때로는 훌쩍이고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소리 지른다.


사랑한다고 인생을 건 용감한 나에게 돌아가

수년 후의 삶을 일러준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서로 기분 나쁜 것 같으면 건드리지 말고 넘어간다. 

특히 국가대표 오지라퍼 출신에 앞다마 전문으로 30년 넘게 살다

참을 수 없는 결혼(?)을 하게 된 '나'로서는

..................................................................................

이런저런 이유로 내 몸에는 사리만 쌓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리 생성을 방해하며 

결국 싫은 소리를 입 밖으로 튀어 나가게 하는 (무수히 많은 행동 중 하나)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자기가 먹은 것을(자유를 찾아 모두가 잠든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녘 행해지는 그의 식도락!!!) 

이튿날 나에게 떡하니 알려주는 행동이다. 

이봐요, 뭘 잡쉈는지 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고요.

설거지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부탁인데

본인이 드신 건 설거지통에 담가 두시라. 

이건 만 세 살짜리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엄마가 하는 말 허투루 듣지 말아라. 

네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 

또 어디서건 음식을 먹을 때는 '잘 먹겠습니다',

다 먹은 뒤에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그리고 먹은 밥그릇과 수저는 설거지통에 넣어두는 거란다. 

큰 아들은 이제 좀 컸으니 네 빨래는 스스로 정리해서 네 방 서랍장에 넣어두고

네 방은 네가 정리해라.

자기 전에는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고, 

옷을 벗으면 빨래통에 넣어두는 거란다.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 도 있겠지.

어느 쪽이건 너네들이 행복하면 장땡이다. 

결혼을 한다면 서로 위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양심'을 잃지 않는 것이란다. 


색시가 맛있는 밥을 해준다면

설거지는 네 손으로 하길 바란다. 

늬 이모의 말에 따르면 식세기 돌리는 것도 힘들다고 하니

식세기라도 잘 돌려라. 

 

어디서 찍어도 각이 나오지 않는다. 맛있게 잡쉈으면 됐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드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만큼 적으냐

정말 얼만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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