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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14. 2022

"뭐가 못생겨? 괜찮네."

형수님을 처음 본 날, 그녀는 나의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께.

어머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코로나에도 불철주야 바쁘게 살아가시는 어머니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콩닥거립니다.

무엇을 하셔도 좋으니 부디 건강만 하셔요.

제가 어머니께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

지금처럼 멋쟁이로 건강하게 사시는 겁니다.


제가 오늘 편지를 쓰는 것은 어머니께 서운한 것들이 있어서입니다.

앞으로 몇 통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어머니께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러자니  속이 곪아터져 이렇게 허공에 대고 편지를 씁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어머니도 아시죠?


어머니, 저는요. 사람들 생긴 거로 말을 아껴요.

왜냐고요? 저도 거울을 보거든요.

제 얼굴을 보고 있자면, 남편에게도 고맙고

성공적인 조합으로 태어나준 새끼들에게도 고맙습니다.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저도 제 생김새를 알고 있다, 이 말씀이어요.

그런데 어머니, 어머니께서 형수님에게 제 생김새를 평가하셨다는 걸

듣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답니다.

어머니도... 사실, 다른 외모 지적하실..... 부분은 없으실 것 같은데...

어머니는 거울도 자주 보시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쟁이시잖아요.


그런데 어머니 젊을 적이랑 똑 닮은 형님에게(사진 보고 기절할 뻔했어요)

저를 두고 못생겼다 하신 건,

ㅎㅎㅎ

뭐 그러실 수도 있겠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뭐가 예쁘시겠어요.

어머니 사랑하는 아들,

제발 좀 며칠씩 데리고 있어 주심 안될까요?

제가 삼시세끼 하면서 남자 셋 시중드느라 너무 힘들어요.

제 새끼들은 제가 낳았으니까 제가 할게요.

어머니 새끼 만이라도 며칠이라도 좀 데리고 계심 안될까요?


저희 결혼하자 마자는 만날 와서 자라고 하셨잖아요.

아버지 아프시다고 무섭다고 만날 아들 부르시고.

저 첫아이 가졌을 때도 만날 불러대셔서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저도 남편에게 의지하고 싶고, 옆에 있어주길 바랐어요.

첫 애 가졌을 때는 왕비 대접받는다는데,

저는 시부모님 챙긴 기억이 전부여요.

아버지 바람 쏘이고 싶다며 왜 그렇게 제 남편은 부르셨던 거야요?

바로 옆에 큰아들도 있는데, 왜 밤마다 멀리 사는 새신랑을 부르셨나요?

주말이면 어머니 아버지 모시고 바람 쏘이러 다니랴,

산부인과 다니랴, 일하랴

저 너무너무 바빴어요.

태교의 'ㅌ'도 못했어요.


남편이랑은 매일 싸우고,

어머니가 저한테 보낸 문자 안 보내졌다고 찍어서 남편한테 보내신 건,

왜 그러신 거예요?

문자가 제가 오란다고 오고 막는다고 안 오는 게 아녀요.

이제 그만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죠.

남편이 아버지를 참 좋아했어요.

마음이 많이 아팠지요.

저도 시댁에서 유일하게 저를 예뻐해 주시던 아버지... 가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례를 다 치르고 장지까지 갔지요.

당연하지요, 며느리도 자식인데요.

그런데 어머니 지나고 나니 섭섭하더라고요.

제가 장지 갔다가 다음날 출근했다 하혈해서 응급수술을 했거든요.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지만,

제가 수술하는 동안 남편은 어머니랑 아버지 자동차 명의 변경하느라 못 왔지요.

네, 저 그때 첫아이 임신 중이었어요.

기억하시나요? 어머니께서 엄청 보고 싶어 하시던 첫 손주요.

임신 5개월, 배도 불러온 며느리가 시아버지 장례식장을 지키는 게...

글쎄요. 게다가 그때는 2015년. 그 병원은 그때 메르스로 난리였어요.

제가 뭘 몰라서 그냥 다 했는데,

지금도 가끔 가슴을 쓸어내려요.

진짜 무사히 낳아서 다행이다. 하고요.


저 그때 몸이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도, 어머니도, 그 누구도

제게 들어가 쉬라고 안 하더라고요.

제가 참 미련했지요?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는데.

게다가 새끼까지 품고 있었으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홀로 남은 어머니가 안쓰러워 남편과 매주 찾아뵈었지요.

어머니 생신 때는

결혼하고 첫 생신이라고 잔뜩 부른 배로 미역국에 잡채에 갈비찜에

어머니 생신상도 차리고요.

저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저도 그때 어머니가 참 안쓰러웠어요.

홀로 남은 어머니가, "누구든 들어와 같이 살면 좋겠다"라고 하실 때

"제가 같이 살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꿀꺽 참느라 애 먹었어요.

....

친정엄마가 아픈 시부모님 모시고 사시는 걸 옆에서 봤거든요.

그게 보통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때 참아서 다행이다, 싶어요.


어머니의 효자 아들 남편은 들어가 살고 싶어 했어요.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다고요.

제가 그랬어요.

"나는 이제 막 결혼했고, 임신해서 일하느라 힘들다. 시어머니까지 모시라는 건 내게 너무 가혹하다."

제가 좀 현명했다면 그냥 가만있거나 모른 척했을 텐데.

정말 많이 싸웠어요. 저의 미련함 때문에.


아무튼 어머니, 어머니께서 그 집 정리해서 저희 빚 정리해주시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시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넓은 집에 계속 살고 싶다셔서 계획은 좀 변경됐지만,

2년 만에 저희에게 혼수로 해주신 2억 까주셨을 때

저 정말 기뻤습니다.


남편이 어머니 집 대출 안고

저희 신혼집 구했을 때,

저는 어쩌면 어머니가 기특해하실 줄 알았거든요?

20평짜리 오래된 아파트라도 사서 살려고 하는 게.

근데 대출금 때문에 만삭까지 일하던 제게 "네가 욕심부려 그렇다"라고 하셨을 때

진짜 진짜 속상했어요.

어머니는 저희가 남편 말처럼 1000에 70짜리 사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어머니,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셔요.

어머니 사회활동 많이 하시니까 아들이 골프채 사준다는 친구분들께 물어보셔요.


나이 마흔에 결혼하면서 오래된 저렴한 작은 아파트 대출받아 아끼고 사는 게 욕심인지.

어머니는 혼자 사시면서도 30평 넘는 아파트에 사시잖아요.


어머니,

더 이상 어머니께서 제게 관리비 얼마 나오냐 안 물으셔서 속이 편합니다.


저희도 애가 둘이어요.

외벌이로 사느라 빠듯합니다.

어머니께 애들 생일, 애들 입학 챙겨달라 바라지 않습니다.

부디, 어머니 멋쟁이로 건강하게 살아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가끔 어머니가 야속하다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을 잘 챙기고 멋지게 살아가는 어머니를 보며

저도 어머니 같은 노후를 살 수 있을까, 기대해봅니다.


아, 저는 아들들에게 집은 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소리하면 미쳤다고들 하지만

그러고 싶습니다. 바람이어요.

그냥 그건 저의 꿈같은 바람이오니, 너무 뭐라 마셔요..


그럼, 어머니

부디 건강하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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