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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15. 2022

"내 용돈은 너네가 알아서 줘."

암요, 그럼요. 물론입죠. 

어머니께.

어머니를 이렇게 많이 불러보는 건 진짜 오랜만이지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신혼여행을 마치고 어머니 댁에 인사 갔던 날이 떠오릅니다. 

전쟁 같은 신혼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저희는 신행으로 유럽 무전여행을 갔어요. 

결혼식날 폐백을 하고 받은 소중한 용돈 20만 원을 들고,

친정 엄빠가 여행 가서 쓰라고 챙겨준 백만 원을 들고 갔어도 부족했어요. 


빈손으로는 갈 수 없어 코스코에서 조카들 줄 초코와 어머니 아버지 선물을 사서 갔지요.

남편은 결혼 축의금을 모두 들고 가서 어머니 아버지께 드렸지요.

아, 저는 제가 챙겨서 야무지게 살림에 보탰습니다. (엄빠 죄송해요)

얼른 받으시던 어머니.

저희가 따로 선물을 하지 않아도 그리 섭섭하지 않으셨겠어요.

형님과 아주버님과 조카들도 모두 왔었는데, 

보통 신행 다녀오면 시댁 식구들 총출동하나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드릴 것을 드리고 돌아가는 뒤통수에 대고

어머니께서 한마디 보태셨지요.

"내 용돈은 너네가 알아서 줘."


띠용.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남편에게 물어보니 결혼 전 어머니께 드리던 용돈을 말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 한 가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는 왜 제 남편에게만 바라시나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묘를 정리하고 싶어 하셨다지요.

천만 원쯤 든다고요. 어머니께서 남편에게 말씀을 전하셨지요.

시조부모님과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님 내외와 저희 내외가 함께 묻힐 가족묘.

아버지 염원대로 가족묘를 정리해 아버지는 그곳에 쉬고 계시고,

저희는 가끔 찾아뵙지요.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

제가 무슨 춘향인가요?

...  저는 제 이승의 종착지가 그곳이 아녔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더 나이가 들고 하면 생각이 바뀔 수 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 남편의 어머니, 형제라고 하더라도

죽어서까지 함께 할 의무는 없지 않을까요?

어머니라면, 어머니 시부모님과 함께 누워서 쉬실 수 있겠어요?

왜, 저한테 고무장갑 주시면서 그러셨잖아요. 

어머니 새신 부였을 때, 아버지 큰집에 가서 찬물로 설거지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고.

어머니는 평생 시부모님 없이 사셔서 모르신다고 생각했는데, 

그쪽 어른들이 어렵다는 건, 어머니도 아시는 거죠?

그럼 됐어요. 어머니도 불편한 거 아시면서 저한테 요구하시면 그건 반칙이죠.


다시 용돈 이야기로 돌아와서, 

어머니, 큰 아들에게는 용돈 달라고 하시나요?

듣기로는 큰 아들 사업에 수억씩 내어주셨다고 들었는데.

왜... 같은 어머니 아들인데, 제 남편에게는..... 왜 그러시나요.


제가 너무 돈돈 거린다고요?

저도 제가 돈돈 거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직접 어머니께 할 수 있을까요?


시댁에 가면 조카들이 뭐 먹고 싶다고 할 때

"계산은 누가 할 거야"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냉장고가 망가졌네"

"너네는 김치 있냐(네, 친정엄마께 얻어먹습니다. 아시잖아요?)"

"친구들은 아들들이 다 사줬단다. 나도 사줘"

이런 말씀들이 쌓이고 또 쌓였나 봐요. 


어머니 손주의 100일 때, 

저희가 밥을 대접하지 않았다고 섭섭해하시던 그 모습. 

100일 떡으로 가족들끼리 새 생명이 무사히 자라난 것을 축하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친정부모님은 저희가 잔치를 하건 하지 않건

아이들 100일과 돌에 금반지를 해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잔치(라고 할 것도 쑥스러운... 식사)를 할 때에만 금반지를 하사하셨지요.

네, 저는 속물인가 봐요. 

저야 어머니와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니,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머니 그리도 보고 싶다고 외치시는 손주들한테는 

왜 그리 야박하셔요?

친구분들이 아들들한테 받는 것만 들으시나 봐요.

제 생각에 그분들은 자식들에게도 베푸실 것 같은데. 


어머니, 

저는 부모 자식 관계도 인간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일방적일 수는 없어요. 

남편 말처럼 '낳아주신' 부모님 은혜, 감사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자식이 언제까지나 늘 부모님께 베풀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것도 그 자식이 새끼를 낳아 가정을 꾸린 뒤라면.


어머니.

몇 해전, 어머니가 기다리시던 첫 손주가 나왔습니다. 

사실은 제가.... 추석에 맞춰 나오라고 부탁했어요.

시댁에 가기 싫어서요.(정확하게는 가서 일하기 싫어서요)

제가 아버지 장례도 치르고 어머니 생신상도 차려봤잖아요?

근데 배불러서 음식 하는 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시댁 가풍이 며느리 사정 봐가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막달 되니까 진짜 몸이 무겁더라고요. 

제가 소싯적에 80kg까지 나가봤는데요, 

그것과는 또 다른 무거움이었어요. 

잘 때도 불편하고 소변은 자꾸 마렵고

하루빨리 낳고 싶다, 라는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몸이 불편(?) 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제 날짜(그게 바로 추석)에 꼭 맞춰 나오라고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이 녀석이!

이 효자 녀석이 그날이 되는 자정 12시 땡!

양수를 터뜨리면서 신호를 보냈지요. 

그래서 저는 당당하게 명절에 시댁을 패스할 수 있었지요. 

17시간 진통 끝에 응급 수술로 아이와 만났어요. 


마취가 깨고 아이를 만났지요. 

친정엄마를 봤는지 안 봤는지 그날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모자 쓴 퉁퉁 불은 아이를 봤고,

제 배에 엄청나게 무거운 게 올라가 있었고

마취가 깨어나면서 고통스러웠어요. 

아픔을 덜어준다는 배에 달아주는 진통제를 달았는데도 아팠어요. 

몸은 아이를 낳았는데도 더욱 부풀어 올랐어요. 90kg 가까이 되는 무게를 보고

식겁했지만, 

자연분만도 못한 미안한 엄마라 젖이라도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며 

모유를 짰지요. 

20분을 짜도 몇 방울 안 나왔어요. 

젖몸살.... 온몸이 춥고 너무 아팠어요.

열이 안 떨어져 수액도 계속 맞고, 어머니는 제가 입원해있는 동안 몇 번 찾아오셨죠.

조리원에 가서도요.

그리고는 아들을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고선 그대로 집으로 가셨어요.

네, 저도 알아요. 저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아들과 손주를 보러 왔다는 것을요. 

그런데, 어머니.

제가 2인실 쓸 때 보니까 옆에 산모는 시어머니가 참 다정하더라고요. 

아들이 나가서 혼자 뭐 먹고 왔다고 혼내기도 하고요. 

괜찮아요. 저는 친정엄마가 있으니까요.

저는 어머니가 낳은 딸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어머니.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저는 제 아이의 색시가 아이를 낳는다면

그럼 아이를 낳은 어미에게 다정하게 해 줄래요. 말이라도요. 

아니면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고 싶습니다. 

(병원비나 조리 원비를 내줄 수 있다면 더 좋겠죠.)

그냥 가서 내 새끼랑 밥 먹고 집에 가지는 않을래요. 

저는 제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거든요. 

그리고 산모가 조리하는 동안은 아무리 손주가 보고 싶어도

절대로 절대로 찾아가지 않을 거예요. 

찾아가서 아직도 퉁퉁 부어있는 며느리에게 내 밥상 차리게는 안 할 겁니다. 


어머니, 

저도 저한테 잘해주는 사람이 좋아요. 

어머니도 그러시죠?

어머니 친구분들 아드님들 이야기하시잖아요. 뭐 사줬다 하면서.

그런데 혹시 어머니 물어보셨나요?

친구분들에게?

"너는 아들 결혼할 때 뭐 해 줬니?"라고요.

ㅎㅎ 물론 어머니가 아들 결혼할 때 쿠쿠밥솥 해주신 건 말씀 안 하셨겠죠.

어머니께서 너무 좋다며 살고 계신 그 집 대출금, 

아들이 장가갈 때 혼수로 해주신 것도 말씀 안 하시겠죠.


어머니, 

저 가끔 남편 보면 많이 안쓰러워요. 

어려서 태권도 학원도 한번 안 다녀봤다는 남편 얘기 들으면

가끔 씁쓸해요.

하고 싶은 거 참 많았던 사람인데. 

어머니께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하셨으면

아들 뒷바라지도 해주실 수 있었을 텐데.

아녀요. 이건 제가 오버했네요. 

어느 누가 감히 다른 사람 인생에 대해 감나라 콩나라 할 수 있겠어요. 

그냥 안타까워서요. 제가 언젠가 물어봤어요. 남편에게.

"오빠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어?"

"낳아주셨잖아. 그거면 됐지."


와우.

남편이 세치 혀로 제 뒤통수를 내리쳤습니다.

KO패.

하하. 어떻게 이렇게 아들을 효자로 키우셨나요. 

왜 둘 중 하나만 효자인가요.

태권도 학원 하나 안 보내셨다고 들었는데.

제 아들들이 남편이 어머니께 해주는 것처럼 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쓰려다가, 

어느 귀한 집 여식을 힘들게 할까 싶어 얼른 접습니다. 


어머니,

남편이 혼수로 해 온 어머니 살고 계신 집 대출금이랑

저희 신혼집 대출금이랑 내느라 저희 똥 빠졌어요.

둘이 벌어도 적금도 못했지요.

근데도 어머니 용돈은 알아서 달라는 말씀에 기절초풍할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모르셨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들과 며느리가 맨주먹으로 결혼해서 살아보겠다고 버둥거리는 것을요. 

전혀 관심이 없으셨던 건가요?


그런데 어머니,

얼마 전에 제게 주택연금 더 받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연금 더 받고 싶으시다고요.

어머니, 그런 건 아드님들과 말씀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저하고 둘이 있을 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이건 제가 진짜 몰라서 여쭈고 싶었는데,

남편한테 말했다간 100프로 싸움 나서 말을 아꼈어요.

이 말씀을 제게 하신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저는 정말 몰랐어요.

"어머니 그래도 어머니는 좋으시겠어요. 이 넓은 집에 연금도 나오고,

사시는데 걱정 없어서 저도 좋아요"라는 말에

"그건 내가 계산이 빨라서 그래"라는 답이 나올 줄은. 

그러니까 어머니.

계산이 빠르시다는 것은... 

혹시 앞의 사정도 다 알고 계셨던 거예요?


이것으로, 

어머니께서 제게 하사하신

돈에 관련된 이야기는 털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머니, 

제가 좀팽이 같은 이 작디작은 마음을 벗어던지고

어머니께도 베풀 수 있는 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요. 

새끼들도 잘 키우고 싶고, 

어찌 되었건 아이들 아빠인 남편과도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저의 이 복잡한 마음

어머니에게 섭섭해하는 마음,

어머니를 째려보는 마음, 

이 마음들을 날려버려야 할 것 같아요. 

이 어둑한 마음에 갇혀 있으면

좋은 생각을 하나도 할 수가 없어요. 

눈물만 나지요. 

그러니, 저의 이 불효 막심한 편지를 용서하셔요. 

그리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아니 저도

제 몸도 잘 챙기며 잘 살아보겠습니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소중한 보물이 들을 지켜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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