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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Mar 03. 2022

준비성 1도 없는 자의 초등 입학기

아이가 8살 초딩이 되는 순간, 엄마도 8살 초딩이 되었다

큰 아이가 학교에 갔다. 

똥기저귀 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양수에 퉁퉁 불어 첫인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학교에 가다니.

어른들 말씀 틀린 게 없다. 세월 빠르다.

입학식에 쭐레쭐레 따라가던 그 길이 

꿈결 같아 고개를 휘휘 저어봤지만 학교 앞 횡단보도.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지난 시간이 갑자기 아득해졌다. 


아이에게 초등학교는 그의 인생 첫 학교이자 강제력(?)이 있는 첫 기관이다.

코로나와 함께 유딩 시절을 보낸 아이에게 유치원은 

어느 때건 가지 않을 수 있는

그러니까 등원이 선택의 영역에 있는 기관이었는데, 

초등학교는 좀 다르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이에게 학교는 가기 싫다고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얘기해줬다.

(사실 이 얘기를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걸까, 혼란스러웠다. 

유난 떨기 싫어 등교시켰는데, 

어제 입학식에 이어 오늘 9시부터 12시까지 딱 3시간 동안

그 사이에만 코로나 확진자를 알리는 이 알리미를 3건 받았다.

이 알리미가 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도 아닌 덜컹 내려 앉늗다.)


1학년은 급식을 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웬걸. 화수목은 식사를 하고 오신단다. 

게다가 밥 먹고 수업도 한 시간 더 하고 오신다고 했다. 

쫄보인 나는 

확진자가 20만 명보다는 줄어들면 등교시키고 싶었지만

입학 초반의 부재가

혹여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는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이런저런 걱정 끝에 

학교는 보내되 

급식은 않고 데려오기로 했다. 

사실, 이걸 담임 선생님에게 전달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것 역시 혹여 유별난 어미 때문에 담임선생님 눈밖에 날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새끼가 뭔지.


이렇게 나는 아이와 함께 다시 8살이 되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아이가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났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부모의 바람 이리라. 

그러려면 아이에게 네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어찌나 양심에 찔리던지....


나는 좋은 사람인가. 

아니, 좋은 사람이던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아이에게 준비물을 미리 챙기자고 했다.

그것 역시 찔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준비성이라고는 1도 없이 평생을 살아온 잇몸주의자 아니던가. 


힘 좋던 시절, 술을 마셔도 대부분은 막차 타기에 성공했지만

가끔 그걸 놓쳤을 때! 에도

집에서는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알아서 오라'며 강하게(?) 응대했다.

늦은 시간까지 살아있는 집 근처 버스 노선을 찾아 

최대한 집 가까이까지 와서 걷던가, 기본요금(?)을 해결되는 구간에서 택시를 탔다.

모두 잠든 시간, 아는 동네에 닿았을 때의 안도감이란.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잡지사의 제주 출장에 신분증을 두고 와

집에 전화하니 

내게 평생을 시달려온 아버지는 

"그래 얘야, 너도 참 힘들겠다.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저는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아 비행기를 못 탑니다.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집으로 와라"

고 답했다. 


진짜 중요한 일 그러니까 먹고사는 게 걸려있는 외의 

거의 모든 일은 대부분 저따위로.....  하던 내가

.... 엄마라고 아이에게 훈수를 두다니. 

미안하다. 아이야. 나도 못하는 걸 너한테 하라고 해서.  

하. 양심에 찔리지만 내일 9시까지 아이를 데려다 주기 위해서는 

잠시 양심을 잊어야 한다.


아무튼 

이 없으면 잇몸, 이라는 말을 온몸으로 살아내 온 사람.... 인 나는

나보다 더한 준비성의 'ㅈ' 도 없는 즉흥파+왕기분파 냥반을 만나

그를 만나기 전 행했던 행동들에 대해 깊이깊이 반성하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 

보내고 있다. 


입학식 이틀 전날,

실내화를 사고

입학식 전날, 

아이 입학 준비물이라는

견출지와 크레파스 그리고 삼단 자동우산을 찾아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이미 예쁘고 좋은 건 다 팔렸다.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그래도 이모가 미리 가방을 선물해줘 들고 갈 가방이 있었다. 

참으로 고마운 동생이다.

평생 도움만 받는구나. 인생 길다니 언젠가 나도 동생에게 갚을 날이 오길 바랄 뿐. 


그래도 동생아, 

지구에서 가장 맛있는 빵이 있다며

드넓은 밀밭 사진과 빵 사진 몇 개로 나를 후려

터어키 여행 함께 해서 좋지 않았니?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자라야 할 텐데.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싶다면

나부터 해야 할 텐데.


아이가 잘 자라길 바라는 만큼, 나부터 잘 자라야겠다.


입학을 축하한다. 아들아.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풀 죽어 있는 네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네게 어쭙잖은 잔소리 하기 전에, 

나를 되돌아보는 내가 되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잔소리가 아마도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그건 어렵겠구나. 


그래도 너의 마음을 

아니 네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내가 될게.

너도 이제 초등학생

나도 이제 초딩 아이를 둔 늙은 초딩.

덩치는 다르지만, 같은 초딩끼리 사이좋게 잘 해보자.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다. 

가능하면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하면 좋겠고,

꿈을 갖고 성장하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뤄갈 힘이 있다는데

이건 나도 어려워서.... 뭐라 할 말이 없다. 

 

바라는 게 너무 많다.

너한테 투자한 원금 생각하지 않도록

투자는 지양하도록 할게. 


보물 1호,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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