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만 원으로 결혼하다 생긴 일

소개팅남 40세, 소개팅녀 33세. 개털 둘이 결혼하기로 했다.

by 봉봉

나는 참 용감했다.

사랑한다고 믿는 그 마음 하나에

남자친구의 잘생긴 얼굴 하나 보고 결혼했다.

... 생각이 짧고 아니, 생각이 거의 없었다.

머리 쓰지 않아도 지도에 점찍고 동선 짜서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가능했으니까.

한 달의 거의 반을 길 위에서 보내면서

머리와 몸, 그리고 마음을 함께 사용하는 일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포만감에 취해 살았다.

명품의 ㅁ 도 모르고, 의복은 몸을 가리는 데 의의가 있었으니

친구들과 술 마실 돈만 있으면 문제없었다.


펑크 낸 적은 없지만

돈을 모으거나 굴리거나 불리는 것 역시 젬병이었다.

남자 친구는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돈을 참 잘 썼다. 그는 베푸는 게 좋다고 했다. 일주일 뉴욕으로 여행 가서 천만 원을 썼다고 했던 이야기를 흘려들은 건 내 잘못이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신생아도 아닌(신생아는 먹은 걸 소화라도 시킨다) 먼지보다 못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결혼을 하려고 까 본 통장을 보고 알았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통장에는 몇 가닥 되지도 않는 개털이 살랑살랑 춤추고 있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했던가.


잘 생긴 얼굴 하나 믿고 결혼을 결심한 남자친구도 못지않았다.

그 냥반은 마흔이나 되셨는데 진짜 돈이 하나도 없었다.

암튼 둘이 가진 걸 다 깠더니 2천만 원..... 가량 되었다.

하하하


내가 미쳤던 게 틀림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지금 정도의 지성(?)을 갖췄다면 그 대목에서 때려치워....

하지만 난 그때 내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인생의 빅 이벤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라는 친구들의 조언을 들을 짬도 나지 않았으니까.


회사 동료들은 나의 연애를 믿지 않았다. 청첩장을 돌리고 나서야 기함했다. 그리고 그동안 휴가도 없이 일했다며 신혼여행 휴가를 2주 하사했다. 하해와 같은 배려에 탄력 받아 스위스에서 니스, 스페인을 신행지로 정했다. 60리터 배낭을 들고 유럽에 가자마자 알았다. 왜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가는지. 아델보덴의 아름다운 설산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결혼하자마자, 혼인신고도 하기 전인데 무르고 싶었다. 이 결혼. 한창 <미생>이 인기를 끌던 때였다.


내가 알기로 남자 친구는 제법 돈을 잘 벌었는데,

버는 족족 다 써버리는.... 사람이었다. (자신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나를 속이지 않았다.

자신의 경제상황을 감추거나 보태지 않고 그대로 깠다.

부모님이 원하는 집에 살게 해 드리려고 자기 전세금을 뺀 데다 부족한 부분은 대출받아

부모님은 그 집에 사셨고, 소개팅 남 역시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 부모님 집으로 합가 했으며,

대출금 이자와 원금을 혼자 오롯이 갚고 있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었다.

아버지 휴대폰 요금, 병원비, 어머니 용돈까지.

소개팅남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장가 안 가느냐"라고 묻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암튼 이쪽 파트는 2박 3일짜리 얘기라서 대충 넘어간다.

결혼하자고 했는데

가진 건 2천만 원.

결혼식, 반지, 신혼여행만 가기로 했다. 그것만 해도 빠듯했다.

친정엄마가 침대, 장롱, 화장대와 이불을 혼수로 보태주셨고

동생이 냉장고를 선물해줬고(나중에 뱉어내느라 피똥 쌌다)

티비는 남자 친구가 쓰던 것을, 식탁은 내가 쓰던 책상을 재활용했다.


웨딩촬영도 패스. 신접살림도 대충 살면서 하나씩 마련하기로 했다.

그래도 효심 깊은 남자 친구는 부모님 옷은 한벌씩 해드리자고 했다.

엄청 싸웠다. 빠듯한 돈으로 부모님 옷까지 해드리자니. 독립적인 성인이니 나보다 연노한 부모님께 뭔가를 바라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남자 친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친구는 부모님께 축의금도 드렸다.

아, 쿠쿠밥솥. 남자 친구의 부모님께서 해주셨다. 맞벌이라도 밥은 해주라는 깊은 뜻을 담아서. 박 터지게 싸운 이유의 8할은....

남자 친구의 부모님,


결혼할 때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도 모르던 나였기에 몰랐다.

하지만 살면서 문득문득 야속할 때가 있었고, 지금도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다만,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느라

지금의 소중한 모든 것들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암튼 덕분에 나도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께 옷을 해드릴 수 있었으니 지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결혼하려는 커플들도 그렇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그놈의 집.

남자 친구는 1000에 70짜리 얘기를 했다.

그걸 감당할 능력은 된다고 했다. (촌스러운 나는 70만 원씩 사라지는 건 싫었다)

남자 친구 회사 근처와 내 집 근처, 가까운 외곽으로 집을 보러 다녔다.

본능적으로 집은 한 칸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집이라도 한 칸 있으면 김치랑 쌀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내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엄청나게 많아 보였다.


지나고 나서 시어머니께선 우리가 대출금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자 "그건 네가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사람 생각은 다 다르다. 하지만 70넘은 어머니께서도 혼자서 30평 넘는 아파트에 사는 게 좋으시다 했다. 잔챙이 같은 생채기들은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한방이었다.

문제는 돈. 쓰기에 따라서는 2천만 원은 결혼만 준비하는데도 부족한 돈이었다.

남자 친구는 이미 본가 대출로 돈이 묶여 있었다.

회사 대출도 이미 다 써버린 상태였다.

(자기도 돈이 없어 돈을 빌려 빌려주었다고 했다. 아직도 매달 이자를 내고 있는데 가끔 천불이 난다.

진짜 인간적으로 돈 빌렸으면 이자는 차치하더라도 원금이라도 나눠서라도 갚(는 시늉이라도 하) 자.)

그래서 둘이 나누어서 대출을 받기로 했고,

친정 근처 30년 된 20평짜리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당시 2억 5천짜리 집을 사면서 대출은 3억을 받았다.

남자 친구 본가 집의 대출을 같이 묶느라 액수가 커졌다.

그때는 왜 그리 용감했는지, 집보다 더 큰돈을 대출받으면서도...

맞다. 나 생각이 없었지.


결혼식 전날까지 마감하느라 야근하고,

부케가 너모 비싸 대충 꽃가게에서 사서 들고 가려다 실패해 식 전날 급하게 고르느라

남아있는 비싼 부케를 골랐다.

다이어트도 못해 생애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결혼식에 70킬로의 몸으로,

씰룩쌜룩한 몸을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던 그 길이 너무나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뛰어들어간 나를 기억한다.

아, 결혼 준비하며 가장 많이 생겼던 일은 문단 문단 사이의 띄운 칸에 적어놓았다.

연애 좀 해본 사람들 눈에만 보이는 전쟁의 흔적.

사이사이마다 핏자국이 있다.

결혼 준비는 전쟁이었고, 결혼만 하면 평화가 오는 줄 알았다.


평화는 없다. 살아있는 한.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새끼들을 잘 키워야 하니까.

살길을 찾아야 한다.

keyword
이전 07화남자친구의 어머니, 아버지, 형과 형수, 그리고 조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