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왜 사직서와 이혼서류를 품고 다녔나

신혼대전 1

by 봉봉

깨방정을 떨며 좋다고 결혼했는데, 첩첩산중이었다.

결혼은 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원가족과 사는 것 같았다.


시아버지께서 아프셨다.

결혼식을 치를때까지 기다려주셨던 것일까.

날이 갈수록 야위셨다.

시어머니는 매일같이 혼자있기 무섭다며 남편을 불렀다.

아픈 아버지가 걱정된 남편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툭하면(고급진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당시 나의 마음 상태는 딱 이랬다) 본가에 가서 잤다.


몸이 이상해 병원에 가니 임신이었다.

결혼한지 이제 갓 석달도 되지 않았는데, 임신이라니.

남편과 내 나이를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었지만,

뭔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우리는 부부가 되기 전에 부모가 되는구나.


처음 병원에 가기로 한 날도 무엇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싸워댔다.

남편은 화가잔뜩 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나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함께 산부인과에 갔다.


축하한다는 말이 왜 그리도 서글프던지.

본인이 화 났다고 앉아있는 그 모습이 미웠다.

때려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근데 벌써 아이가 생겼다니. 기쁜일이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그렇게 임신한 몸으로 출장과 마감, 집안일까지

그걸 당연하게 했다.

매일 아침밥을 해서 먹이고 나도 먹고(미련한 짓이었다)

저녁밥도 내가 차리고 치웠다. (미련하고 멍청한 짓이었다)

나는 왜 현명하게 굴지 못했을까.

남편이 아침밥을 원한것도 아니었다.

그는 아침밥 보다 마음이나 편하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침밥을 지금도 먹는다. 아이들 덕분에.


임신 소식을 전하자 시어머니는 "안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다"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내가 아이를 낳자 미역을 사다 주셨다.


아무튼 나는 그때 힘들었던 것 같다.

항상 가슴팍에 사직서와 이혼서류를 품고 있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에는 이걸 던지면 된다, 는 생각 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시절이었다.

결혼한 남편-내가 선택한 유일한 가족-은 내 편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그의 부모님과 형제가 우선이었다.

대출금을 낼 때마다 심장이 쪼여왔다. 내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애기 낳으러 병원비며 조리원비는 낼 수 있을까.


경제적인 부분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 와중에 아픈 시아버지는 가족묘가 쓰고 싶다고 하셨고, 시어머니는 그 얘기를 남편에게 전했다.

아들이 둘인데, 게다가 둘째인데 항상 남편차지였다.

가족묘는 천만원 정도 든다고 했다. 내 자리까지 있다는 말에 기절할 뻔 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버지와 각별했다.

젊은시절, 밴드를 하던 남편은 벌이가 변변치 않았는데

아버지께서 여러모로 배려해주셨던 것 같다.

부자가 여행도 다니고 아버지도 남편을 좋아하고, 남편도 아버지를 위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아버지는 결혼하고 7개월 있다 돌아가셨다.

나는 임신 5개월차에 들어갈 즈음이었다.

몸이 힘들었지만, 장례식장에서 함께 생활했다. 3일장을 치르고 장지에도 따라가서 시아버지를 보내드렸다.

다리가 퉁퉁 부었고 몸도 힘들었지만,

아무도 내게 집에 가서 쉬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남들이 얘기하지 않아도, 내가 힘들다면 응당 들어가 쉬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똥멍청이였는지, 구닥다리 아낙네였는지 그러지를 못했다.

21세기에도 며느리의 위치는 이런 건가.

당시에는 엉겁결에 그리 했지만, 장지에 다녀와서 다음 날 바로 출근을 한 후에 일이 벌어졌다.

하혈을 했다.

놀라서 남편에게 연락했더니 남편은 시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시아버지 차를 명의변경(?)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친정엄마와 병원에 가서 시술같은 것을 받았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지만, 내 마음은 변했다.

남편을 잃은 시어머니에 대한 감정도 애틋함에서 원망하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시어머니는 누구든 들어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미 신혼에 합가해서 살던 형님은 절대 같이 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서글프고 쓸쓸한 시어머니를 보며 "같이 살자"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그게 그냥 감정으로 되는 일은 아니었기에 눌러 담았다.)

남편에 대한 감정도 좋을리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결혼한 남자의 집에서 나를 지키고 나를 챙기고 나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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