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단어, '오빠'

오빠 소리 못하는 이들에게 고함

by 봉봉

나는 오빠가 없다. 내가 맏이다.

어려서부터 '오빠'라고 부를 사람도 없었다.

사촌 오빠들이야 있었지만,

가까이 살며 왕래가 잦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오빠'라는 말을 쓸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대학에 가서야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들을 부를 일이 생겼는데,

일단 선배인 남자는 다 선배라고 부르면 됐고,

동기지만 나이가 훌쩍 많은 남자들은 '00 형님'이라고 부르면 됐다.

(이건 나 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그분들을 00 형님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동기들을 부를 때였다.

그들을 부를 마땅한 용어가 없었다.

왜냐하면 '오빠'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도 하지. 그 말을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간지럽기도 하고.

해서 그냥 동기인 '오빠'인 남자들은 부르지 않았다.

간혹 급할 때는 가까이 다가가 용건만 말하곤 했다.

나중에 친하게 된 나이 많은 남자 동기들은 그냥 이름을 부르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그게 제법 고민거리였다.


소개팅 자리에서는 00씨라고 불렀지만,

남자친구에게는 오빠라고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친구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일단 나보다 7살 많은데 '야'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형님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했다. 남자친군데. 무슨 조직이냐?

오빠라고 부르기 전에 '오라버니'라고 장난처럼 부르기도 했다.


퇴근길,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내 반드시 오빠라고 부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오빠."


뱉어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왜 이 말을 못했을까. 이 좋은 말을.

오빠, 오빠, 오빠, 오빠.

친정엄마는 아직도 아빠에게 오빠라고 못하고, '여보'라고 부른다.

이것도 유전인가?

나는 더 늙기전에 오빠라는 말을 텄으니 다행이다.

조금만 더 일찍 텄으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


아니다.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오빠라고 부르니까 기분이 어때?"

남자친구도 오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전 여자친구가 연상이었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남자친구도 나도 '오빠'라는 단어가 주는 신선함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옆에 지나가던 남편에게 마법의 단어 '오빠'에 관해 쓰고 있다고 하니, 한 마디 보탰다.

남자들에게도 마법의 단어가 있다고 한다. 그 말만 들으면 술 마시고도 정신이 번쩍 난단다.


"진짜? 그런게 있어? 뭔데?"


"마누라."


부인을 뜻하는 말은 남편을 뜻하는 말만큼 많다.

아내, 안사람, 집사람, 와이프, 마누라......


나는 그에게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


남편은 주로 내 이름을 부른다.

00아.

나는 계속 내 이름으로 불리고 싶다.

결혼을 하면서 부인이 됐고,

며느리가 됐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가 됐다.


어떤 역할을 하건 어떤 모습을 하건,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내가 좋을 때도 있지만,

먼지보다 하찮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다. 많다.

쪽팔려서 밤새 이불킥을 하는 순간도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그래도 어떤 순간에도

나는 내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다.

오롯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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