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말 들으면 싸움박질 뿐, 내 연애는 내 스타일대로(그래도 싸운다)
"따르르릉"
소개팅 주선 전화였다.
무교동을 넘어 강원도 산골에 사는 선배까지 나섰다.
어린양을 어여삐 여긴 선배는
"나쁜 남자야. 잘 만나고 배워서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라"며
지금의 남편을 소개해주었다.
벌써 10년 전 일이라
AS 기간도 끝났건만,
내 인생은 계속되고 있고
그의 인생도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2013년 7월28일
서른 두살 여름 그날,
광화문 씨네큐브를 향해
냉장고 바지를 입고 (떡진 머리를 가리려) 앞머리에 실핀을 꽂고
나는 달렸다.
종각역 5번 출구, 비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다 머리가 더 큰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고 시원한 아아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커피를 사 들고 그 앞에 앉았다.
긴팔 셔츠의 팔을 걷어 부치고 동남아 어디메쯤에서 파는 팔찌를 하고 있었다.
내 이상형 소지섭과 닮았다
우아하게 쭉 뻗은 손가락과 손톱. 소지섭과 똑 닮은 손가락이 멋있었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다 <마지막 4중주>라는 영화를 봤다.
혼자 봐도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였는데,
초면인 남자와 그걸 다 보고 나오니 날은 어두워지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남자가 차를 태워준다고?
내가 너를 언제 봤다고 니 차를 타라는 거니?
신세지는 것도 싫고 가뜩이나 우울한 영화로 꿀꿀한데.
하지만 나는 그 차를 타고 우리 동네로 갔다.
사방이 막혀있는 차 안의 불편함.
다행히 그 차는 천장에 창문(?)이 있어서 비가 내리는 걸 볼 수 있어 숨통이 좀 트였다.
아무튼 동네 이자카야에서 술도 한잔 마시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그 사람은 대리를 불러 집으로 갔고
나는 택시를 타고 내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은 기함했다.
일단 처음 만나는 날 무슨 시네큐브에서 영화를 보냐, 가 문제였다.
"니가 진짜 마음에 안 들었나보다"를 시작으로
"처음 만났는데 데려다주지도 않고 갔다고? 텄다, 텄어!" 까지.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술값을 그 남자가 냈다는 게 문제였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 계좌로 반띵해 보내면 되는 것을(지금 생각하면)
그냥 한번은 더 만나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한번 사서 퉁 치면 클리어.
그런데 그 남자가 바빴다.
세상에 한달에 열흘 넘게 출장 나가있는 나보다 더 바빴다.
겨우 만나서 밥을 사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더 만날 일은 없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른 아홉살 그 남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게 되었다.
친구들은 "사귀자"는 말이 없으면 사귀는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 말도 없이 얼렁뚱땅 5번쯤 만났을 때,
그 남자가 내 출장지로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아니, 더 촘촘하게 이야기하자면
내 다음 이동지로 자기 친구들과 먼저 내려와서 한잔 하면서 놀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지금 무슨 사이길래
내가 그 남자의 친구들을 만나야 하는가.
그리고 내게 묻지도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그 남자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 탈출했으면 우린 더 행복했을까....?!)
서로 통성명(?)을 하고 그 남자의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무창포 해변을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남자와 나는 각자의 방에서 푹 자고 다음날 만났다.
내가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도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제부터 그동안 적립해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몇 것들을 함께 해결해 나갔다.
그렇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깨방정 떨던 여자는
....이렇게 되었다.
(요모양 요꼴이라는 상스러운 표현은 어울리지 않으니 쓰지 않겠다)
참으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