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끝이 결혼?
우리는 참 달랐다.
나도 나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는데
나보다 더한 자유로운 영혼을 만났으니
내 인생 최대 강적이었다.
그래도 나는 남자친구가 좋았다.
내게도 남자친구가 있어서 좋았고,
내가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게 좋았다.
무엇보다 연애를 하는(그걸 드디어 하게 된) 내 자신이 좋았다.
'사랑'이 뭘까?
옆에 있을 때 미치겠는 사람 말고
옆에 없을 때 미치겠는 사람이 진짜 사랑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옆에 있건 없건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 같았다.
헤어지면 아쉽고,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운전해서 집에 가는 동안 통화를 하다 잠이 든 적도 있다.
그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잊지 않고, 변치 않고 나를 데려다 주었다.
차가 있으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나는 그러지 못했을 것도 같다.
나도 너무 피곤하고, 나도 쉬고 싶고 할때는 그냥 가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남자는 변치 않고 데려다 주었다.
좋은 사람이다.
문제는 다툴때마다,
그는 한번도 내게 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말싸움에서 그 남자를 이겨본 적이 없다.
나도 사람인지라, 7~8년 쯤 되었을 때는 말싸움 해봤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이상 말쌈움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전에는 진짜 피터지게 싸웠다.
내가 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대사였다.
강철같은 남자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였다.
지금은 뭘로 그렇게 싸웠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대부분의 싸움은 집안(관련) 문제였다.
그 남자는 (어울리지 않게, 믿어지지 않게) 효자였다.
독립적으로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사는 바람같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건 맞는데)
효자였다. 게다가 그의 형도 끔찍하게 위했다.
그의 형이 그를 위하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는 형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조카도 사랑했다.
그의 원가족 사랑에 내가 들어갈 틈은 없어보였다.
(나는 사람이 사람을 위한다는 표현을 말이나 돈 같은 눈에 보이는 걸로 하니까.
그 남자의 부모님이나 형제가 그에게 그런 표현을 하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다투고 나면 그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
그렇게 무수히 많은 싸움 끝이 왜 결혼이었을까.
결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누가 결혼하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서른 세살, 마흔살 개털 둘은 2천만원 들고 결혼하기로 한다.
언젠가 그 남자에게 물었다.
"대체 왜 나랑 결혼한 거야?"
나는 조금은 기대했다. 나를 사랑해서? 없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이런 달달한 말들을.
"나는 니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어, 그래. 고맙다. 근데 나 좋은 사람 싫은데. 좋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 좋은 사람이잖아?
나는 나한테도 아니 나한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부모님에게 잘하는 좋은 사람 말고,
나 대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좋은 사람 말고,
나 대신 형제에게 잘하는 좋은 사람 말고,
나를 포기하고 자식에게 올인하는 엄마 말고,
나보다 더 누군가를 위하는 좋은 사람 말고,
그런 좋은 사람 말고.
나한테 그 누구보다 나한테 다정하고 싶어.
나한테 용기를 주고 싶고,
나한테 상냥하고 싶어.
나한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