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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Feb 07. 2022

'엄마'도 '지금'도 쉽지 않구나

나밖에 될 수 없는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지는 말자

내게는 보물 1호와 2호가 있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좋다고 깨춤 추다 결혼했고

결혼하자마자(정확하게는 1달쯤 후에) 보물 1호가 찾아왔다.

부부가 되기도 전에 부모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이가 생긴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30년 넘게 살면서 듣던 '첫아이' 임신했을 때 누리는 혜택(?) 들은 별로 누리지 못했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된 전쟁 때문이었는데

왜 결혼했냐,를 서로에게 퍼부어대며 남편과 엄청나게 싸웠다.

후. 대체 왜 그랬니. 왜 그랬을까? 


신혼여행과 함께 승자도 패자도 없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60리터짜리 배낭 들고 신혼여행 가면 안 된다는 교훈은 얻었다.

만약, 다음(?) 신혼여행의 기회가 온다면 무조건 휴양지로 가리라 다짐해본다. 

혹시나 신혼여행을 배낭여행쯤으로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면, 

소중한 친구라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릴 것이다. 

돈도 시간도 서로에 대한 배려도 넘쳐난다면 어디든 문제없겠지만)


스위스 아델보덴 숙소 <캠브리안>에서 설산을 바라보며

쿱에서 사 온 국적불명의 컵라면을 먹으며 

'외박을 하네 마네'로 피 터지게 싸웠다.

자유로운 영혼인 남편은 '내가 하는 외박은 딴 놈(?)들의 외박과 다르다'며 

외박을 못하면 콧구멍이 막혀 죽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결혼이 장난이냐'며 '결혼을 했으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건 안 하는 게 맞지 않냐'라고 

반격했다. 

그랬다. 지금도 꿈결 같은 아델보덴의 설산을(설산 뷰로 바꾸느라 50유로씩 더 줬는데) 뒤에 두고

싸워댔다. 외박을 하네 마네로. 둘이 합해 칠순이 훌쩍 넘는 나이였음에도. 

미련한지고. 정말로 시공간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라면 과거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인간아, 설산이나 실컷 보고, 이틀 더 묵으며 스키나 타보라고.


또 한 번은 스위스의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한참 걸어가서 힘들었다. 잘 모르는 단어를 찾아가며 기껏 메뉴를 골랐는데

남편이 2개를 골라 주문했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오리지널 퐁듀에 무슨 감자전 같은 요리가 나오기 전

또 피 터지게 싸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부터 가장 많이 다투게 된 원인은

'미안하다'였다.

나는 화가 나면 남자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그는 '미안하지 않은 일은 미안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나는 이게 미안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마음이 상했다면 미안하다"라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대사였으니

씨알도 안 먹혔다.

아마,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나,라고 얘기한다면 스스로가 너모 가련해지니 패스)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이리라고 짐작해본다. (물어보진 않았다.)


30년 넘게 살아온 나 자신도 모르겠는데 

40년 넘게 살아온 나 아닌 사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근데 '사랑한다'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 하나로

인생을 걸고 결혼을 한다. 벌써 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느라 나는 밥을 하고 똥을 치우고

남편은 뼈 빠지게 돈을 번다.

가끔 안쓰럽다. 이마에 푹 패인 주름이며 늘어난 흰머리에 부쩍 늙은 남편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푹 퍼진 아줌마 몸매를 한 스스로를 보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은 자는 시간뿐,

(자는 시간 줄이면? ...)

내 인생이고 내 시간인데 내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 

1호와 2호, 그리고 남편에게 쓴다. 

매일 밥을 세끼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개고(제일 싫다. 빨래 개는 기계가 나오면 72개월 할부로라도 사겠다)

정리를 한다. 

귀를 좀 파줘야 할 것 같은 보물이 들은 제 멋대로 논다. 

놀다 싸우다 울다를 반복하고,

예비 초등 아이에게 아주 기본적인 학습(?)을 하게 하고

애들에게 텔레비전을 조금이라도 덜 보여주려고 나는 티브이를 끊었다.


21세기를 살던 나는 그렇게 섬이 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법에 정해진 것도 아닌데

나는 내 일을 접고 가정에 들어와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한다.

울고불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출근하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나'를 되뇌곤 했는데. 워킹맘들 파이팅. (집에서 애 보는 건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없다. 십년 넘게 찍히던 월급통장이 텅장이 되자, 이 세상에 내가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석되었다.) 

아이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않으려고 한다. 

언젠가 코로나가 끝날 것이고, 

어쩌면 코로나가 끝나지 않아도

나는 아이들을 기관에 보낼 것이다. 점심도 먹이고 오후 서너 시까지. 

아이들이 코로나에 감염될 위험이 제로라면, 

그럴 수 있겠지. 생각만 해도 설렌다. 그럼 그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겠지.


지금 내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시간이다. 


살림과 육아. 

둘 다 쉽지 않다. 

둘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주부들은 집에서 애만 보는 게 아니라 애도 보고 살림도 한다.

내가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가사도우미를 쓰고 싶다.

내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 대가를 지불하고 싶다는 뜻이다. 

가사노동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남편에 대한 반격이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는 지금을 견딜 (원대한) 바람이기도 하다.


나와 성이 다른 생명체 셋과 거의 2년간 24시간 붙어있다.

진은 빠지고

살은 찐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 가고,

내 살길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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