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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29. 2022

코로나 시대, 명절을 맞이하는 며느리의 진심

"확진자가 너무 많다. 애들도 어려 위험하니까, 좀 지나고 보자."

다시 돌아왔다.

구정. 


어릴 때는 세뱃돈 받을 생각에 깨춤 추며 기다리던 설날. 


장성하여서(?)는 친구 만나 수다 떨고 한 잔 하고

맘 편히 늦잠 자고 TV 보며 뒹굴거리다

기름 냄새 풍기는 따끈한 수제전을 집어먹던 휴일

(엄마 미안해요. 그때도 땡땡이치고 처먹기만 해서.

그때 안 한 거 지금 다 하고 있어요.)

 

연애할 때는 남자 친구랑 어디 갈까, 뭐할까 고민하던 휴가(?) 였던 소중한 명절 연휴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반갑지가 않다.

명절이 표시된 달력을 보면 갑갑하다. 

물도 김치도 없이 허겁지겁 고구마 먹다 목에서 넘어갈 때 느끼는 아픔도 더해진다. 

아프다. 



나는 당신이랑 같이 걷고 싶(었)다. 주욱. 


그래도 코로나 전에는 괜찮았다.

전날 가서 음식 하고,

당일날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점심때까지 버티다

(상 차려 조상님께 절하고, 세배하고, 밥 먹고,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과일 깎고, 커피 타고 하면 10시 정도. 

이후에는 텔레비전만 켜 두고 시간을 때운다. 다들 말이 없다. 밥 먹고 치웠으면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점심 먹고 가아."

(상 차리고, 먹고, 치우고... 이거 진짜 쉽지 않아요. 사람이 몇 명인데 왜 며느리 둘이 다 하나요?

그래도 요신 형님 덕분에 나는 시키는 것만 하면 된다. 다행이다.)


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눈만 꿈벅거리던 며느라기는

"친정엄마가 기다리세요."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결혼하고 나서 받은 강력한 시어머니의 말쌈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 역시 또두 없이는 털 수 없는 이야기들. 


인간아, 그 남자가 그리 멋있었단 말이냐? 로 귀결되며

예쁘게 잠든 새끼들 얼굴을 보며 콧물을 닦는다.


엇갈리지 말고.



무튼. 코로나 전에는 명절에 당연히 갔다. 

아이를 낳고 100일이 되었을 때도 갔고, 

이틀 전에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갔고,

얼마나 유서 깊고 뼈대 있는 대단한 가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집 아들과 결혼을 한 나는

아무튼 갔다. 


막아줄 사람도 없고, 중간에 나서는 사람도 없고 

이게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겠지. 

또, (아직) 사랑이 넘칠 때에는 남편을 위해서 그리 했다. 

와. 21세기에 이런 사고를 갖고 있는 인간이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다. 


나야. 너, 내 밥은 내가 벌어먹는다, 라는 인생관(?)으로 살던 현대인 아니었니?


2020년 1월, 코로나 시작이었다. 

어째서 기억하느냐,

설날 전, 여행을 갔었다. 

벼르고 벼르다 한 푼 두 푼 모아서는 아니고

있는 카드 없는 카드 돌려 막을 각오로 여행을 갔는데,

그게 마지막 여행이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늘은 참 맑구나.


이후로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을 넘어 만 명대의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

한 번도 '오지 마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딱 한번, 얼마 전 제사에 오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형님의 결정(?)이었다.)

참고로 친정에도 가지 않았다. 

로또 3등이라도 당첨될 확률로 친정에 가면 부모님께 마스크를 써주십사 부탁드렸고, 

나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다.

집에 있는 엄마라 그래야 할 것 같았고

남편 역시 어린이집에 보내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건 물어본 건 아니다. 다만 그는 한 번도 보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긴 시간이었다.


확진자 숫자와 시댁은 다른 세상이었다. 

남편과는 매번 가네 마네로 싸우다, 결국 상처투성이가 된 채로 그곳에 갔다. 

항상 갔다. 

2021년 시어머니 생신을 다녀오며 얘기했다. 

"앞으로 가네 마네 얘기하지 말고 그냥 가자. 어차피 갈 것, 싸울 이유가 없다."

남편이 배시시 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부모님, 그러니까 본인의 장인, 장모에게는 단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내가 안 갔으니까?) 연락도 하지 않았다. BBAK.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되는 건 아들로서 당연한 마음 이리라. 

두 분이 계셔도 부모님이 걱정되는 건 딸로서 당연한 마음이다. 

알겠냐? 


무튼, 1.7만 명을 넘어 2만 명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확진자 숫자에도

오늘 이 시간까지 아무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이번 설에도 가야 할 것 같다. 



서울시, 저작권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사우나도 다니시고 포켓볼도 치러 다니는(부디 수영장은 폐쇄되었기를) 시어머니의 말씀이 

핏덩어리 둘 키우는 어미에게는 하나도 괜찮지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 포스터 중 '코로나는 괜찮아를 좋아합니다' 이거 진짜 시어머니께 보내 드리고 싶었다. 

부디 보셨기를. 


제사에 오지 말라던 형님 왈

"어른들은 주사도 맞고 하니까 걸리면 치료 받음 되는데 애들은 조심스럽다"

며 "친한 동생 아이가 양성이 2번 나와서 온 가족이 난리 법석이다."


제사 때는 코로나가 위험하고

설날에는 코로나가 괜찮은지 묻고 싶다. 


손주들이 보고 싶은 그 마음을 외면하겠다는 건 아니다.

보고 싶으실 게다.


한 번이라도 '코로나가 너무 심하니 좀 잠잠해지면 보자'라고 말씀해주셨다면 

지혜를 짜내(?) 방법을 찾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심이나 이런 것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계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과연 나는, 내가 시어머니가 된다면, 만약 이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보고 싶지만 어쩌겠냐. 좀 잠잠해지면 그때 보자."라고 할 수 있을까.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코로나 시대를 저미고 있는 쫄보 며느리의 진심. 


얼큰한 라면으로 속을 풀어본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아주 살그머니 조심스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호오오옥~~-시 어머니가 오지 말라는 말씀 없으셔?"


그 남자,

소리 없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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