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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15. 2022

미안하다, 생각한다.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때, '생각한다'라고 말해본다.

결혼은 드라마와 달랐다. 살아보겠다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결혼 3년이 평생을 결정한다고? 정말? 진짜? 


사랑이 뭘까.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바로 옆에 있는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신기루 같은 그것. 


연애를 책과 드라마와 영화 등 매체를 통해 배운 사람에게

실전은. 달랐다.

연애와 사랑도 다르고

사랑과 결혼도 다르고

결혼과 사랑도 달랐다. 

무튼 달랐다.

그래도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사람이었기에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가 좋았던 것 같다.

남자 친구가 생겼다고 깨춤을 추던 나,

'오빠'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뱉기 위해 연습하던 나,

나보다 큰 남자 친구와 키를 맞추기 위해 구두를 사던 나,

남자 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었던 리스트들을 하나씩 완수(?)하며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신나 하던 나.

'대장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나'라고 우기던 나.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고

방금 헤어졌는데 보고 싶고

뒤돌아서면 아쉽고


그랬구나. 우리. 아니 나.


처음 샀던 구두. 키 큰 남자 친구와 같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저런 구두를 장만했다. 몇 번 신지도 못했다. 저기서 떨어지면 추락사다. 가만 보니 셀프로 장만한 유리구두 같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인천공항 한편에 누워

머리에 박힌 무수히 많은 고정핀들을 뽑아주던 그때,

가끔 다정하고 따뜻했던 그 순간이 생각난다.


신혼 대전 중 남편이 들고 온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서 게리 채프먼(오늘 처음 알았다. 그 이름)은

(신혼 대전 중 잠시 휴전 상황일 때 남편이 사다준 책이다. 남편은 그 책을 2번 사 왔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달라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중요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인정하는 말이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선물, 봉사, 스킨십 등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저 아래 단전부터 처 오르는 분노와 딥빡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한 구절을 읊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 "남편에게 페인트칠을 해달라고 9개월 전에 이야기했는데 아직도 안 했다"라고 찾아온 아내가 있다.


5D 마크 투 들고 다닐 때에도 멀쩡하던 손목이 1일 3식 밥상에 솟구쳤다. 발사 준비 완료.

(여기서 잠깐. 엄마 죄송해요. 엄마가 "너는 하숙생이냐, 잠만 자고 나가게."라며 청소하라고 할 때마다 귓등으로도 안 들어서. 그때 못한 청소며 밥이며 지금 다 하고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무엇을 하셨나요?"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죠. 날씨는 좋은데 페인트칠 대신 컴퓨터만 손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남편이 페인트칠을 했나요?"

"아니요, 아직도 안 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남편에게 다시는 페인트칠 얘기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남편이 좋은 일을 하면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3주 후 그녀는 "그 방법이 통했다!"며 기뻐한다. 

잔소리 대신 칭찬이 통했다는 뜻이겠지.


그래 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것을.

근데, 내가 결혼을 고래랑 한 건 아니지 않은가. 

포유류는 맞지만, 고래는 물에 살고 내가 결혼한 포유류는 뭍에 산다. 


그 책 뒤표지에는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이라고 적혀있는데

내가 배우고 싶은 건 다른 사랑의 기술이었지,

먹물 냄새나는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아니었다.

역시 세상살이 내 맘 같지 않다.


그래도

지난 글에 썼던 '개털 둘이 결혼했다'는 자조적인 표현이 자꾸 걸리는 건

혹여 그... 잘 생긴 소개팅 남이...

그 글에 상처받지는 않았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애틋한 추억 대신 

살벌한 현실을 선택한 나에게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인생 최대 용기를 내준 잘생긴 남자에게.

(당신의 아픈 부분을 깐 것 같아)

미안하다,


혹시라도 이 글에 다쳤다면,

부디 모르는 척 넘어가 주시라. 

아직 낯설고 어색한 공간에

잠시 주저앉아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은 아니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것이니.


미안하다,

그래도 당신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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