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열어가는 정다운님과의 제비살롱 이야기
해마다 가을이면 연희동 가게들 곳곳에 아름다운 포스터가 붙는다. 제로웨이스트 페스티벌인 “유어보틀위크”의 포스터, 동네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연희동에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퍼트리고 있는 보틀팩토리가 여는 축제이다. 토요일 낮, 제비들과 함께 연희동 골목골목을 걸으며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하는 로컬 공간들을 여행했고 그 길의 끝에, 보틀팩토리의 정다운 대표님과 함께 보틀팩토리 사무실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상여행을 함께 한 제비들, 보틀팩토리의 이야기가 궁금해 제비살롱에 참여한 이웃들, 보틀클럽에 가입해 화성에서 텀블러/그릇도서관을 준비하고 있는 페어라이프 센터 멤버들이 함께 했다. 여행길에서 무포장으로 구매해온 비건 간식들과 제로웨이스트카페인 보틀라운지에서 리턴미컵을 대여해 받아온 음료로 다과를 준비했다. 함께 모인 사람들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인사를 나누었고, 이웃주민으로서 참여한 뮤지션 솔가가 축하공연으로 살롱의 문을 열어주었다. ‘같이 살자’와 ‘괜찮아, 그대’라는 노래를 선물해주었다. ‘삶의 무게에 그대 흔들려도 저만치 멀리서 그댈 노래할게요’라는 가사에, 마음 깊이 울리는 목소리에 모두 함께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띄고 함께 눈 맞추며, 보틀팩토리가 걸어온 여정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비: 적극적으로 제로웨이스트 활동을 해나가고 계시는데 관심 가지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다운: 원래 큰 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퇴사하고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그린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카페들에서 너무 많은 일회용 컵들이 버려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어요. 일회용 컵이 버려진 다음의 과정이 궁금해서 쓰레기차를 추적하는 <쓰레기 여행>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일회용 컵이 재활용이 안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그 당시에는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기도 전이라 매장 내에서도 모두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어요. 그런데 재활용조차 안된다는 걸 알고 나니까 이렇게까지 많이 버려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스타벅스가 생기기 전엔 테이크아웃 없이도 잘 살아왔거든요. 일회용컵 없이도 돌아가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겟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것 같아요. 일회용 쓰레기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던 때였는데, 컵을 대여해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카페들 가서 여쭤보고 했는데 ’카페를 안해봐서 그게 불가능한 걸 모른다‘는 이야기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저도 안해봤으니가 뭐라 할 말이 없는 거에요.
제비: 그래서 직접 일회용품 없는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하신 건가요?
다운: 처음엔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보틀카페’ 실험을 했어요. 보틀팩토리는 2018년에 연희동에서 시작해서 올해로 4년차인데요. 처음 연희동에서 보틀팩토리를 오픈한 것도 커피를 팔고 싶었던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컵공유 서비스와 일회용품 없는 카페, 우리동네 세척소를 해보고 싶어서였어요.
제비: 유어보틀위크를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다운: 다른 카페들과 협업해서 컵을 대여하는 서비스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동네 카페들과 협업을 해야하는데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기도 전이다 보니 쓰레기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어요. 제로웨이스트를 강요할 순 없으니 문턱을 낮추기 위해 ‘일주일만 함께 해보면 어떨까요?'하고 제안했어요. 사람들이 텀블러가 없어서 안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마음으로 공간에 방문했는데 그 공간이 바뀌어있어야 변화가 일어날거라 생각했거든요.
제비: 유어보틀위크에 참여하는 공간들을 섭외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다운: 저도 ‘이게 될까?’ 싶었지만 일단 연남동에 아는 사장님 카페에 가서 제안드려봤어요. 취지를 설명드리고 ‘일주일만 함께 해주시겠어요?’ 했더니 구체적인 제안서를 만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취지를 떠나서 내가 무엇을 해야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건지를 정해서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되게 도움이 되는 조언이었어요. 그래서 제안서를 만들어 드렸고 첫 해에 딱 카페 7곳을 섭외해서 진행했어요. 평소에 좋아하던 곳들이었는데 평소에 매장 안에서 먹을 때 기본적으로 일회용품 안쓰고 머그컵에 주는 곳들이었어요. 사장님들이 다들 이미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셔서 수락해주셨어요. 첫 해에는 음료에 빨대를 꼽아서 주지 말자, 테이크아웃 할 때 텁블러 사용을 먼저 한번 제안드리자는 미션을 드렸어요. 테이크아웃용 쌀빨대, 다회용 빨대도 준비해서 사장님들이 해야할 게 없도록 세팅해 진행했어요.
제비: 참여하신 사장님들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다운: 처음에는 빨대를 먼저 드리지 말고 따로 요청하는 분에게만 드리자고 미션을 드렸더니, 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 같다고 여성분들은 립스틱 때문에 다 빨대를 달라할거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일주일동안 빨대를 달라고 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놀랐다고 하시더라고요. 음료를 드릴 때 메모지에 ‘빨대없이 마셔보면 어떨까요?’ 써서 드렸거든요. 일단 다들 그냥 마셔보시고 정말 필요한 분만 달라고 하신거죠.
제비: 유어보틀위크가 ‘페스티벌’이라고 명명한 게 인상깊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다운: 사실 유어보틀위크가 실제로는 어디서 무언가 매일 벌어지는 게 아니라서 ‘페스티벌’이란 단어가 어울리진 않았어요. 그런데 ‘캠페인’이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변화를 추구하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환경문제가 있으니 이렇게 해야해!'하고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하고싶게 만들고 즐길 수 있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하고 싶게, 기분 좋게' 만들고 싶었어요. 첫 번째 유어보틀위크에서 중요했던 '축제'와 '살롱'에 대한 모티브는 샌프란시스코 그린 페스티벌에서 얻었어요. 그린디자인을 공부하고 친환경대전 등에 나갔는데 끝난 뒤 엄청난 양의 부스 설치물이 포크레인에 쓸려 버려지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린 페스티벌에서 진짜 동네 사람들의 축제처럼 즐겁고 자연스럽게 살롱과 워크숍들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어요. 우리 동네에서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첫 번째 유어보틀위크 첫날에는 함께 다큐를 보고 대화를 나눴고 매일 하나씩은 행사를 잡아 축제처럼 구성하고 마지막 날에는 살롱을 진행했어요.
첫 번째,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
사람들이 빨대를 필요로 할 거란 생각은 제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안 바뀌어요. 그런데 일주일 동안 해보면 생각보다 빨대를 요청하는 사람이 없단 걸 경험하시게 되거든요. 유어보틀위크의 목적은 그런 경험을 직접 해보실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함께 시작의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첫 해에는 즐겁게 하는 것, 사람들이 참여공간들을 찾아가고 싶게 안내하는 게 목표였어요. 또 매일 행사를 열면서 사람들이 이렇게 연결되고 함께 하는 것을 원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커뮤니티’라는 키워드가 강해졌고 ‘동네’에서 뭔가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두 번째, 우리동네에서 시작되는 변화
두 번째 해에는 카페들끼리 연결해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동네에서 하는 행사 느낌으로 확장 되었어요. 골목에 집중해서 분식집 같은 동네 가게들도 섭외했고요. 동네에서 공연도 개최했어요. 우리가 무언가 즐기기 위해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길 바랐어요. 그래서 ‘커뮤니티’를 중심점으로 두고 우리 동네 사람들과 무언가를 해나가며 동네를 변화시키고 있어요. 다양한 동네 가게들이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둬서 사람들이 직접 통을 가져와 담아달 수 있도록 했어요. 일주일이 짧다는 피드백이 있어 행사를 좀 더 알리기 위해 2주로 늘려 진행했어요. 기간이 끝나고 포스터를 떼러 갔는데 가게 사장님이 ‘일회용품 안 쓰면 나도 좋지’하면서 포스터 떼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조금씩 변화가 있음을 느꼈어요. 사실 보틀팩토리에서 여는 무포장 장터 채우장도 손님들이 통을 안가져오면 아무것도 못산다는 게 어이없잖아요. 셀러 분들한테도 리스크가 크니까 처음엔 제가 다 사입해서 진행했거든요. 그런데 다들 일회용품을 줄이고자 통을 들고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장을 보시고 하니, 주변 가게들도 보고 이게 되는구나 하신 거죠. 판매자도 소비자도 동네 사람이니 함께 티키타카를 생기며 동네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세 번째, 버릴 것 없이 채우는 일상
유어보틀위크,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희동의 랜드마크인 사러가쇼핑센터처럼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도 섭외하고 57곳으로 섭외가게들을 늘렸어요. 유어보틀위크가 지속되면서 상시적으로 무포장, 벌크로 파는 곳들도 많아졌어요. 상시적으로 제로웨이스트 장보기를 할 수 있게 된 거죠. 유어보틀위크때는 더 본격적으로 변화를 경험하도록 안내하고 가시화하는 거예요. 일정기간에 몰리니 가게 입장에서도 이런 걸 원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느끼시고, 무포장으로 판매하니 손님들도 훨씬 편하게 갈 수 있는거죠. 동네에서 소비자분들과 가게들이 함께 경험하며 변화해가는 기간이에요.
네 번째, 일회용품 없는 동네에서 동네로
올해 슬로건입니다. 연희동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개최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셔서 인천과 서촌에서 함께 하게 됐어요. 유어보틀위크는 공이 많이 들어 힘들지만 ‘변화가 보이니까’ 뿌듯해서 계속 해왔어요. 끝나고 참여하신 가게들 돌면서 인사드리면 다들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자고 제안하시고 감사인사 하시고 하니 계속 해오게 됐어요. 올해는 인천 녹색연합에서 먼저 연락을 주시기도 했고요. 사실 다른 지역까지 뻗어나가며 어마어마한 공이 들어가서 힘들었어요. 4년째 하고 나니까 내년에 5회차까지 할 수 있을지는 조금 고민 중이예요.
제비: 올해 유어보트위크 섭외를 하며 기억에 남거나, 힘이 된 가게가 있으셨나요?
다운: 저는 항상 지역 안에서 자원을 모아서 재분배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중 하나가 꽃이었는데요. 저는 꽃다발에 매져있는 리본 타이나 잡지들을 다 모아놓거든요. 그런걸 꽃집에 가져다놓고 손님들이 재사용 포장재로 골라서 꽃다발을 만드는 걸 상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꽃집을 섭외했는데 저희가 생각한 방식이랑은 조금 다르지만 토요일에 재사용포장재를 사용한 꽃다발을 판매하는 식으로 함께하게 됐어요. 또 세탁소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세탁비닐을 거절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근데 사실 세탁한 옷을 비닐에 넣은채 두는 게 옷에도 안 좋고 비닐쓰레기가 나오니 거절하는 캠페인도 있더라고요. 세탁소에서 받자마자 비닐을 벗겨서 드리면 다시 쓰실 수 있냐 여쭤봤더니 가능하다 하셨어요. 다른 세탁소 사장님은 그런 사람 거의 없다고 거절하셨는데, 그 분은 그런 사람들도 종종 있고 비닐도 다시 쓸 수 있으니 좋다고 해주셨어요. 같은 제안을 드려도 사장님들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걸 실감했고, 본인이 먼저 하셨어야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해주니까 좋다고도 해주셔서 힘이 됐어요.
제비: 앞으로의 나아가고자 하시는 방향성이나, 하고싶으신 일은 무엇인가요?
다운: 일단은 쉬는 것이 필요하고 제로클럽처럼 하고 있는 시도들을 비즈니스화해서 완성시키는 일에 관심을 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 잘 담아내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요. 이번 유어보틀위크에는 연희동 고양이와 인천 부엉이, 서촌 멍멍이 세 동물 캐릭터가 제안하는 제로웨이스트 산책코스가 있어요. 단순한 제로웨이스트와 용기내를 넘어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넣은 요소입니다. 인포숍에 가면 각 캐릭터가 추천하는 책이 있는데 연희동 고양이는 <로컬의 미래>를 추천해요. 앞에서 이야기했던 ‘커뮤니티’와 연결된 맥락인데요.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다보니 동네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공간들이 있기에 가서 요청해 제로웨이스트로 구매할 수 있잖아요.
제가 <로컬의 미래>를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로컬은 규모의 이야기’라는 것이였어요. 규모가 너무 커지면서 모든 것이 우리 눈에 안보이는 도시 밖으로 나가게 됐죠. 그래서 내가 쓰는 전기가,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서 오는 건지, 내가 버린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두 보이지 않는 영역의 일이 됐죠. 생산자를 알 수 없고 내가 일으키는 환경오염을 인식하기도 어려우니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의 규모, 휴먼스케일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얼굴을 보고 인사할 수 있는 규모에 있는 게 중요하고 그로서 회복 될 수 있는 게 많다고 느꼈어요. 단순히 제로웨이스트 실천을 넘어서 그런 커뮤니티, 유대,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동네에서 걸어다니며 물건을 사는 소중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느꼈고, 그래서 동네에서 제로웨이스트로 물건을 구매하며 산책할 수 있는 코스를 만들어 제안했어요. 제 관심사는 커뮤니티, 로컬, 작은 규모가 주는 감각을 회복하는 일에 있는 것 같아요.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마음을 두고 해나가고 있어요.
보틀팩토리 다운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각자의 마음에 소중한 씨앗을 뿌렸다. 우리 동네에선 어떤 가게를 섭외해서 유어보틀위크를 열어볼 수 있을지, 우리 지역에서는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건 옵션들이 있어 환경실천의 문턱이 낮고 사람들이 즐겁고 자연스럽게 시도해볼 수 있다는 것. 걸어 있는 동네 가게들에서 제로웨이스트로 물건을 살 수 있는 기쁨, 걷고 싶은 골목이 있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것. 그 감각들은 19년도부터 연희동에 살며 소중하다 느꼈고 제비의 일상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지점이다. 그것이 다운님이 소중히 생각하신 지점들과 같아 보틀팩토리를 통해 일궈와 주셨음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다운님의 이야기가 끝난 후, 멀리 원주에서 보틀팩토리 팬이라며 전해주신 선물, 경복쌀상회의 복씨가 다회용기에 담아주신 화성 수향미, 라부아진에서 재사용포장재로 포장해온 꽃다발, 뮤지션 솔가의 앨범까지 소중하고 고마운 마음을 담은 선물을 가득히 전하며 살롱의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