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필사, 그리고 우리의 버켓리스트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엄마의 취미는 필사이다.
최근에는 엄마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빨강머리 앤을 영어로 필사하기 시작했다.
어떤 것이든 하나에 빠지면 미친 듯이 파고드는 엄마는 빨강머리 앤을 벌써 여러 번 필사를 마쳤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슬며시 제안을 하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한 챕터씩 빨강머리 앤 필사를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주말에는 쉬어도 되고 평일에만 딱 30분만 하자고.
그리고 사진을 찍어 서로 공유를 하자고.
처음에 그 제안을 들었을 때는 그리 긍정적인 생각이 들진 않았다.
거의 동화책에 가까운 빨강머리 앤을 영어로 적는 게 의미가 있을까?
영어공부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평일에 매일 한다는 것도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필사를 하며 성취감을 느끼던 엄마를 보니 차마 거절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 또한 빨강머리 앤 필사를 시작을 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쉬는 시간을 활용하여 필사를 시작했다.
10분 정도 리스닝을 하고, 본문을 영어노트에 옮겨 적는다.
내용에 중요한 단어와 문법을 다시 한번 체크한다.
그리고 노트 인증사진을 찍어 우리만의 톡방에 올린다. 그러면 끝.
정말 30분 안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이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되고,
며칠이 지나니까 나도 모르게 작은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다.
문법이 항상 부족했던 나에게 아차! 싶었던 부분들도 많이 있었다.
카페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쪼개서 공부하는,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빨강머리 앤을 같이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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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첫째 주 토요일
빨강머리 앤의 마지막 챕터 31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전 날 금요일에 다 쓰면 끝나는 거지만 왠지 마지막 장은 엄마랑 쓰고 싶었다.
그리고 엄마랑 각자의 빨강머리 앤과 영어노트를 챙겨, 집 근처 좋아하는 카페로 향했다.
햇살 가득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토요일 오후였다.
창가자리에 앉아 바람 한가득 맞으면서 우리는 마지막 챕터 필사를 했다.
마지막 문장이 참 좋았다.
"I think life is going to be good for all of us!
We have each other, what could be better that that?"
엄마랑 이 문장을 같이 읊어보았다. 마음이 살짝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필사한 노트를 보면서 말했다.
"근거 있는 뿌듯함이지. 공부의 가시적 즐거움이야. 작은 성공의 맛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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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에 캐나다 워홀을 떠나려고 하는 나에게, 엄마는 또 다른 버켓리스트를 만들어주었다.
엄마의 소원이 빨강머리 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는 거라고.
그리고 내년에 나랑 꼭 그곳에 가고 싶다고.
왜냐하면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캐나다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빨강머리 앤 필사도 마치고 나니, 나도 꼭 그 섬에 가보고 싶어졌다.
엄마가 사랑하는 빨강머리 앤을 찾으러 가고 싶어졌다.
ㅇ2024년에는 엄마랑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가기.
*그림에 적은 글은 즉흥적으로 적었기에, 브런치에 다시 정리해서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