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앗 늦었다!!"
누가 비틀어 꼬집은 듯 깜짝 놀란 토끼눈으로 눈을 뜬 내 얼굴과는 달리, 집안은 고요했다.
'뭐지?'
이렇게 조용할 리가 없는데...
삼백이와 연하남은 달콤한 낮잠 1번 중이었다.
오늘은 이유식 만드는 날이다.
원래 9시쯤 일어나 삼백이의 아침을 먹이고, 마트 가서 장을 보고 3일 치 이유식을 만들어야 한다. 3일치면 하루 삼시 세 끼로 3가지 메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눈을 뜬 시간은 오후 1시였다.
오, 마이 갓!
고된 육아 때문에 곯아떨어진 걸 아는 건지 연하남은 날 깨우지 않았다. 어쨌든 고맙긴 했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다. 연하남이 4시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난 그전에 이유식을 끝내야 했다. 헐레벌떡 준비를 하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왔는데, 내가 이유식 조리를 시작한 시간은 3시였다. 이유식 메뉴가 3가지면 재료만 해도 9가지 정도 되는데, 채소 다지기부터 고기, 생선 미리 익히기까지 재료 손질만 해도 1시간 가까이 됐다. 와중에 마음이 급한 걸 알았는지, 난 손을 베었고, 출근해야 하는 연하남이 결국 대신 이유식을 만들어야 했다. 늦게 일어난 와이프 때문에 출근 전 급하게 마트에 갔다 온 것도 모자라, 이유식까지 만들어야 함이 짜증 났을 법도 하다.
연하남은 나에게 물었다.
"이제 알겠지?"
"뭘?"
"여보가 우리 집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여보가 늦게 일어나니깐 우리 가족 모두가 비상이잖아. 역시 여보는 우리 집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야."
이게 위기상황에서 그가 날 대하는 방법이다.
육아로 자존감이며, 자신감이며 다 바닥 친엄마는 이 한마디로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그리고 알았다. 4살 어린 연하남은 나보다 어른이었다. 아님 달근달근한 멘트로 연상녀를 간질 간질이는 그저 착한 여우인 걸까?
뭐든 상관없다. 이 남자와 함께 한다는 건 행복이다.
사실 난 이유식 만들면서 실수를 많이 한다. 워낙 많은 재료를 준비하다 보니,
"악! 이거 저기에 넣어야 하는데 여기에 넣어버렸어. 아 난 바보야."
라며 매번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땅으로 푹 꺼져버렸으면 좋겠다며 다운그레이드가 잘 되는 고물에게 착한 여우는 특효약이다.
위기 상황에도 날 탓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이 모습에 안 반할 여자가 있을까?
난 어리면서 착하기까지 한 여우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