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 소리와 오바로크 치는 소리를 찾습니다.

by 오늘

우리 집은 늘 시끄러웠다.
엄마와 아빠는 가내수공업으로 옷 공장을 했기 때문에,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거실 한쪽은 미싱들이 쫙 늘어서 있었고, 그 미싱은 거실 옆 방까지 차지해 버렸다. 다른 방 하나는 옷을 여미는 똑딱이 기계와, 단추 및 똑딱이 등 잡다한 부속품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안 방까지 공장 장비들을 두지는 않았다.
늘 미싱 소리와 오바로크 치는 소리, 미싱사 아줌마들끼리 수다 떠는소리로 고요할 틈이 없었다. 마당엔 마당의 절반을 차지하는 큰 재단판이 있었고, 재단판 밑에는 수많은 원단들이 쌓여있었다. 우리 집 개는 가끔가다 그 재단판 밑으로 들어가, 원단들 위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아빠에게 걸리는 날이면, 우렁찬 불호령을 듣고 난 후에야 거기에서 나왔다. 조용히 풀이 죽어,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미미를 볼 때면, 불쌍한 느낌이 들었다.
한 번은 강아지 집에 들어가면 어떨지 너무 궁금해져서, 내가 강아지 집에 들어간 적이 있다. 개집 역시, 아빠가 직접 만들었기에, 일반 개집보다는 훨씬 크고 높았다. 물론 개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도 아빠에게 따끔하게 혼나 내쫓기듯 나와야 했다. 만약 내 자식들도 개집에 들어가면, 나도 무척 싫어했을 것 같다.
아빠는 일해주는 사람들에게 간식거리를 준다며, 기다란 식빵 1 봉지와 케쳡을 사 올 때가 있었다. 배급 당번은 내 몫이었다. 일이 워낙 바빴는지, 다들 미싱에서 내려와서 도란도란 앉아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난 미싱이 돌아가면서, 뱉어낸 수많은 옷자락들 사이에 앉아, 빵을 한 장 한 장 꺼내 케쳡 바르는 일을 했다. 그때는 옛날이라, 잼보다 케쳡 발라먹는 게 흔했다. 그땐 그 배급 일이 무슨 벼슬이라도 된 마냥,
'나에게 잘 보여야, 케쳡 많이 뿌려주겠어.'라는 심술이 튀어나왔고, 빵 가운데에 손톱만큼만 케쳡을 짜서 미싱사들에게 배급해줬다.
아줌마들의 원성을 사며, 난 졸지에 악덕 배급사가 되기도 했다.
지금 그 시끄러운 집은 없어져,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어렸을 때, 추억의 실체는 요즘 세상의 텃새에 못 견디듯 아스라 졌지만, 내 머릿속엔 늘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어릴 땐 싫어했던 그 기계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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