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도망쳐 나에게 온 사람

향숙이 언니

by 오늘

"철컹, 철컹, 철컹!"
"누구요?"
야밤에 집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우리 가족은 깜짝 놀랐고, 아빠는 가족의 청일점답게, 큰소리로 누구냐 물었다.
"사장님, 저 향숙이요."
우리 집에서 일하는 향숙이 언니가 우는 소리를 내며, 집 밖에 서 있었다.
'일은 진작에 끝났는데, 무슨 일인지...'
아빠는 마당을 가로질러 나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그곳엔 향숙이 언니와 남동생이 맨발로 서있었다. 남동생은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헷갈릴 정도의 나잇 대였다. 아빠와 엄마는 두 맨발을 보자, 놀랐지만 침착하게, 미싱이 즐비한 방으로 데려갔다. 흐느껴 우는 소리와 간간히 새어 나오는 목소리로 보아, 향숙이 언니 아버지란 사람이 또 술을 먹고, 언니와 동생을 흠씬 두들겨 팬 것 같았다. 언니는 아버지를 말리다 역부족이었는지, 동생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뛰어온 거였다. 얼마나 정신없이 왔길래, 신발까지 못 신고 온 건지...
향숙이 언니가 불쌍하단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난 너무 어린 나이였다. 동정심이나 안쓰러운 감정 자체를 몰랐을 테니까...
그날 이후로도 향숙이 언니는 몇 번을 우리 집으로 도망 왔다. 그 아버지란 사람도 찾으러 오지 않았다. 나중에 한 번은 찾으러 왔었는데, 술을 자주 먹어서 그런 건지 벌건 눈만 기억에 남는다. 엄마 없이 술주정 부리는 아버지에 미성년자 남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우리 집에서 미싱 일을 했던 향숙이 언니.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어깨와 등이 살짝 굽어 있던 언니. 아마도 너무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할 짐이 무거웠던걸까...
새까만 머리카락, 이마를 덮는 앞머리에 찢어진 눈인 향숙이 언니. 내 눈엔 세상에서 제일 착한 사람이었다. 이따금씩 일이 끝나면, 피곤했을 텐데도, 내 머리를 감겨주고 퇴근을 하곤 했는데, 샴푸 후 린스를 머리카락에 문지르지 않고, 세숫대야 물에 린스를 풀어서 내 머리를 헹궈주었다. 아무렴 어떤가...
머리 감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나에게 향숙이 언니는 천사였다.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향숙이 언니는 내 마음속에 늘 여운 깊은 린스 향 같은 존재다.

어려서 몰랐던 안쓰러움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된 걸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내 머릿속엔 불쑥불쑥 향숙이 언니가 찾아온다.

이제는 내가 향숙이 언니의 머리를 감겨주고 싶은데...

어딘가에서 잘 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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