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씨는 평생을 여행자로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쌓아놓은 재산이 없는 Cu씨가 벌이 없이 여행하면서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서 Cu씨는 늘 고민하고 고민했다. 돈을 벌면서 여행도 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학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던 Cu씨의 눈에 띈 것은 화상과외 강사. Cu씨는 이거다 싶었다. 화상과외는 인터넷으로 학생들과 화상으로 마주보며 할 수 있는 과외 수업이었다. 인터넷이 되는 환경에 컴퓨터만 있으면 수업을 할 수 있어서, 여행하면서 일을 하기에는 제격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화상과외 강사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면서 여행하게 되는 그 날을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Cu씨는 드디어 일하며 여행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기간을 한달로 정하고 어느나라에서 한달동안 지내면서 여행을 할 것인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뜨고 있다는 포르투갈? 로맨틱한 나라 이탈리아?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예술의 나라 프랑스? 그렇게 고민하다가 정열의 나라 스페인을 고르게 되었다. 그리고 Cu씨는 12월의 어느 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스페인으로 향했다.
오전 7~8시 기상.
12월에 한국 스페인은 시차가 8시간이 난다. 한국에서 수업을 할 때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 온 후 저녁 시간 때 수업을 진행하는데, 스페인은 시차 때문에 오전부터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저혈압이라는 핑계로 절대로 아침형 인간이 될 수 없는 Cu씨는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침에 기상을 하게 된다. 아침식사는 고사하고 감은 눈으로 겨우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 입는다. Cu씨는 역시 먹고 사는 일이란 고달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전 9시~ 오후 4시 수업.
Cu씨는 열심히 체험 삶의 현장을 경험한다. 마드리드에서는 집주인도 없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낮 내도록 수업을 했다. 세비야 호스텔의 공용 공간에서 수업을 하고 있으면,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열심히 떠들어 대는 내가 신기한지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고, 대놓고 다가와보기도 했다. Cu씨는 수업을 받는 학생들에게 온전히 집중을 해야 하므로 그들의 관심을 받아 줄 수가 없었다.
바르셀로나 한인 홈스테이에서는 수업하기 정말 힘든 환경에 Cu씨는 좌절을 하고 말았다. 인터넷 속도가 좋지 않아 수업이 끊기기도 했으며, 이웃집 공사하는 소리에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었으며, 더군다나 다른 방에 일하시는 분께 방해가 될까봐 소리를 조금도 크게 내지 못하고 소곤소곤하면서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Cu쌤은 일주일만에 숙소를 호텔로 옮기고 만다. 그리고 채광이 잘 들어오는 호텔에서 맘껏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후 4시~ 밤10시 여행자 되기
이제야 비로소 여행자의 신분을 되찾는 시간이다. Cu씨는 수업을 마치자 마자 빛의 속도로 숙소를 빠져 나간다. 그리고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마드리드, 세비야,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관광지도 돌아다녀보고, 진짜 동네 마실하듯 동네를 하염없이 산책하거나 벤치나 강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기도 한다. 커피 한 잔의 여유도 가져보기도 하고, 한국에서 보기 힘든 풍경들을 고스란히 눈에 담아본다.
마드리드에서는 미술관 도장깨기도 하고 세비야에서는 하루 한 번 스페인 광장을 들러보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함께 저녁 먹었던 동행에게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렇게 Cu씨는 한달의 시간을 스페인에서 보내고 있었다.
밤 10시~ 밤 12시. 다음 날 수업준비
역시 먹고 살기란 고달픈 일이다. Cu씨는 밤 10시쯤이면 어김없이 숙소로 돌아와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해야 했다. Cu씨는 최근에 산 물건중에 아이패드와 아이펜슬을 산 일을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캐리어에 아이들 수업교재만 23kg를 훨씬 넘었을 수도 있다. 아이들 교재 스캔본을 아이패드에 담아서 교재연구와 수업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캐리어가 훨씬 가벼워 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쨋든 Cu씨는 매일 잠들기 전에 아이들 숙제 검사와 다음 날 수업을 꼼꼼히 준비한 후 다음 날은 수업 마치고 어디를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