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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 Sep 05. 2019

돈 없는 여행자의 행운

5 DAYS


천주교 신자로 15년 동안 살아왔기에 매주 미사를 드리는 건 당연한 일정 중 하나였다. 여행에 와서도 미사가 드리고 싶었기에 오전 일찍 채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왔다. 12시 30분 미사 시간에 맞춰가려고 나왔는데 기차를 하나 놓쳐 10분 정도 지나서야 세인트폴 대성당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려 성당을 찾아가기에는 수월했다. 어렵지 않게 성당에 도착했지만 입구에서는 가방검사를 하고 있었고 옆에는 입장료 20파운드가 적혀있었다. 슬프게도 필자의 전 재산은 40파운드였다. 한참을 옆에서 서성이며 들어갈까 말까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아직 일주일이 남은 나의 런던 여정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할 수 없이 성당 주변을 배회하며 외관 구경만을 했다.



그러다 숙소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평일에만 입장료를 내고 주말 미사 시간에는 무료로 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일에 내는 입장료의 간판을 치우지 않아 많은 여행객들이 나처럼 혼동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입장료를 내고 미사를 봐야 한다고 오해했을 때 과연 이것이 주님이 원하는 것일까? 주님을 보러 온 수많은 여행객들을 이렇게 내쳐도 되는 것일까? 하는 원망 아닌 원망을 했었다. 기도가 무척이나 고팠던 나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도 화가 났었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쓸데없는 오해였다는 것을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다음 주 일요일에는 미사를 꼭 보리라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다. 세인트폴 대성당에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중세 시대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런던을 대표하는 성당이고, 왕족이 아닌 서민들과 함께 호흡한 공간이었다. 런던 대화재로 완전히 불탔지만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35년을 투자해 재건축한 건물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돔으로 가졌으며, 훗날 워싱턴 국회 의사당이나 파리의 판테온 건축에 영향을 미친 성당으로 훌륭한 건물은 또 다른 이에게 영감을 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아쉬운 발걸음으로 웅장한 세인트폴 대성당을 뒤로한 채 센즈 베리 슈퍼마켓에 들어가 도넛 하나와 딸기 그리고 초콜릿 우유를 사서 의자에 앉아 성당을 보면서 점심을 때웠다. 돈이 없는 여행자의 점심 값은 3파운드도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운이라는 것은 항상 따라오는 법, 전날 우연히 알게 된 퀴어축제의 소식이다. 퀴어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적 소수자를 의미한다. 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축하하는 퍼레이드가 바로 퀴어축제이다. 한국 같은 경우에는 시위 형태로 비치는 축제 아닌 축제이지만 런던에서는 전 국민이 다 같이 즐기는 축제였다. 필자는 욕심을 부려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축제 막바지에 참여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행렬을 본 것은 오늘의 축복 중 하나였다. 마지막 행렬이었기에 펜스 바로 앞에 서있을 수 있었다. 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교감을 하고 웃음을 건네며 그들을 응원했다. 종교적인 문제도 연루되어있어 한국에서는 민감한 주제지만 필자는 성적 소수자를 지지한다. 사람의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니 그것을 억압할 필요도 죄책감을 가지게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애틋함이 죄라고 칭하는 것과 같은 논리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이 우리가 나눈 기준에 있어 이성과 동성이라고 말하며 근거를 덧붙이는 것일 뿐, 그래서 필자는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축제를 보면서 전 국민이 이들을 환영하는 것이 인상 깊었고 다들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보며 선진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필자에게 자유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내 마음대로 놀 거라는 생각은 하기 어려울뿐더러 한국에서 이런 마인드를 가지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그렇게 논다. 가게 벽면에 올라가 춤을 추는 커플, 버스 정류장 위에 올라가 박수를 보내는 여성, 웃통을 까며 뛰어다니는 남성 등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즐긴다. 그 모습이 부러웠다. 그에 비해 우리는 박수와 환호 그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같이 다니는 조원 중 한 명은 과감하게 망사 스타킹에 숏팬츠 그리고 크롭티를 입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 있으면 하지 못할 것을 여기 와서 처음 해봤어.” 씁쓸하지만 인상 깊은 말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튀지 않는 법을 배워왔기에 억압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슬프지만 한 명이라도 그렇게 용기를 내며 다니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예전에 봤던 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유명한 도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동성애의 수용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포용성을 말하는 것이다. 영국은 상위권에 있을 만큼 동성애 포용성이 높고 축제도 거부감 없이 모두가 즐긴다. 동성애가 아닌 사람들도 튀는 의상을 입고 한국에서 말하는 ‘미친놈’처럼 놀아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을 다 수용한다. 우리는 그에 비해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이 보인다. 런던보다 당연히 한국이다. 그만큼 애국심을 가진 나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그래서 선진국의 문화를 답습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게 한국에 가서도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한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도 그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겠지 생각하며 한국의 축제다운 진짜 퀴어 축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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