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국 도서관을 갔다가 지난번에 가지 못했던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을 갈 계획으로 밖을 나섰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유스턴 가에 위치한 영국 도서관은 숙소와 거리가 멀지 않아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많은 블로그에서 보이는 뉴턴의 거대한 동상이 보이고 그 뒤로 입구가 나온다. 입구 들어서기 전 배가 출출하여 도넛 하나를 먹었는데 나 이외에도 밖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입구에 들어섰다. 어느 관광지를 가도 가방 검사를 하는 편이지만 특히나 영국 도서관은 더욱더 검사를 철저히 한다. 왜냐하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들로 인해 보험에 가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 가지 문서를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텐베르크 성경, 모차르트가 죽기 직전까지 들고 다니던 음악노트, 현재까지 딱 한권만 전해져 오는 셰익스피어의 자필 문장, 윈스턴 처칠의 연설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북, 루이스 캐럴이 직접 쓰고 그림을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본, 제인 오스틴이 어릴 때 쓴 습작 노트,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이다. 문서들만 들어도 영국 도서관의 가치와 보험회사의 거부사유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기념품샵과 서점 그리고 카페가 있다. 친구가 부탁한 물건이 있어 기념품 샵에 먼저 들어가서 물건을 구입한 다음 서점에 들어갔다. 영국 서점에 갈 때마다 전반적으로 느끼는 점인데 겉표지의 디자인과 질감이 예뻐서 소장용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책을 사면 점심과 저녁을 굶어야 하는 관계로 본능에 충실한 선택을 하였다. 책을 사지 못하여 더 자세히 구경을 하고 나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여행 책이었다. 보통 여행 책 하면 특정 국가의 에세이나 정보서 같은 책이 주를 이루는데 이곳에는 여행을 하는 방식에 대한 주제로 쓴 책이 있었다. 여행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를 알려주는 책은 잘 보지 못했던지라 인상 깊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서점 구경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아쉽게도 서재는 열람증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 가보지 못했다. 열람 증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회원증을 만들어야 하고 카드 발급 비용은 무료인데 거주지와 본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가지고 가야 한다. 이런 복잡한 절차로 인해 열람 증 발급은 하지 못하고 카페와 책상이 마련되어 있는 공용공간만을 이용하였다. 국립도서관에 가면 공부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듯 여기서도 그런 사람을 흔히 접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부러웠던 것은 세계적인 위인이 공부하고 태어난 곳이기에 다른 곳보다 특별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에 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필자도 그 사이에 자리 잡아 다음 여행지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런던 다음으로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이태리이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선택해서 읽었다. 사실 책은 카페에서 읽어도 되지만 이왕 온 김에 그들처럼 영국 도서관의 기를 받고 싶었다.
책을 읽다 잠시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았는데 순간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는 아무래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 꾸미지 않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에 비해 비교적 외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외적 가치를 배제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내적 가치의 중요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지식의 부족함으로 인해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 와서 문뜩 든 생각은 듣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주제를 꺼내야 하며 그 주제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축적됐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침묵을 지킬 뿐이다. 대화는 경청이 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경청에 대한 이해의 몫은 개인마다 다르기에 결국은 듣기 위한 공부를 해야 많은 사람의 생각을 듣고 스스로의 다양성을 넓혀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알면서도 결국 놀기를 좋아하지만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깨닫는다면 인생의 방향은 그렇게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공부를 할 때는 잘 듣기 위해서 한다 라는 마음으로 임하게 될 것 같다. 지식의 산물인 만큼 이런 내적 가치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공간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그렇게 영국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다음 노팅힐 포토벨로 마켓으로 향했다. 지난번에 헛걸음쳤기에 오늘은 주의해서 길을 찾아갔다. 캠든 마켓은 한국의 홍대와 같은 느낌이라면 포토벨로 마켓은 가로수길 느낌이 난다. 신기하게도 포토벨로 마켓 또한 부유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색색별로 있는 집에서 찍은 사진이 유명한데 유럽에서는 이런 건물을 흔하게 접할 수 있어 낯선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각각의 상점이 개성 있고 다양한 물건이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가장 유명한 THE NOTTING HILL BOOKSHOP을 보는 재미도 컸다. 유명세에 걸맞게 안에는 재미난 아이템들로 가득 찼다. 책도 책이지만 책으로 만들어진 부채와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엽서 그리고 뜯어서 쓰는 봉투 등 다양한 아이템이 있어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구경을 하였다. 서점마다 파는 에코백도 유명한데 가장 유명한 에코백이 런던 북샵 디자인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도 워낙 예쁜 디자인이 많아서 에코백 구매할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블로그 후기를 보면 마켓을 거의 열지 않아서 볼게 별로 없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볼거리도 많고 한적하니 좋았다. 사람이 바글바글하고 현지 마켓을 더 잘 느끼고 싶다면 토요일 방문을 추천하고 필자처럼 한적하고 여유롭게 보고 싶다면 평일 방문도 추천한다. 서점을 나왔는데 바로 옆 아이스크림가게에 슈퍼주니어 최시원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궁금한 마음에 슬쩍 보았는데 역시 연예인은 다르다는 걸 느낀다. 흰색 슈트를 멋있게 차려입었는데 팬은 아니지만 확실히 계속 눈길이 가게 된다. 이렇게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연예인을 해외에서 보는 우연은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분 좋게 마무리해준다. 2주 동안 런던에서의 삶, 참 다사다난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잃어버리는 물건 없이 안전하게 잘 여행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나눌 겸 친한 이들과 숙소 로비에 모여 술 한 잔 기울였다. 수다를 떨다 밤을 새우고 다음 국가로 이동했다. 과연 남은 일정에서의 여행은 어떤 것을 보고 느끼며 한국으로 돌아갈까. 일상에서 벗어나 매일 달라지는 하루가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서게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