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2 – FORBIDDEN LOVER

Part 9 - 절망의 확산

by The being

Part 9 - 절망의 확산


망항시는 이미 도시의 기능을 잃고 있었다.


대형 쇼핑몰의 네온사인은 꺼진 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고, 버려진 차량들이 교차로에 뒤엉켜 도로를 막고 있었다.


신호등은 여전히 붉고 푸른 빛을 번갈아 쏟아냈지만, 그 불빛을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

거리는 바람에 날리는 종이와 전단지만이 부유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뚝 끊긴 듯 적막했다.


남아 있는 이들조차 고개를 깊게 숙인 채 벽에 바짝 붙어 걸음을 옮겼다.

어깨가 닿을까 두려운 듯 서로 거리를 극도로 벌렸고, 무엇보다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 순간, 좁은 골목 한복판에서 두 남자가 실수로 눈이 마주쳤다.


짧은 찰나였다.


그러나 곧 한쪽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잿빛 반점이 목덜미에 번졌다.

검은 혈관이 빠르게 얼굴로 퍼져 올라갔고, 그는 울부짖으며 무릎을 꿇었다.

동공이 까맣게 번지자마자 그의 울음은 합창으로 변해버렸다.


“…보라.”


짧은 단어가 뿜어져 나오자, 곁에 있던 행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어떤 이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고, 어떤 이는 스스로 눈을 감은 채 벽을 더듬으며 도망쳤다.

마주친 눈빛이 전염의 문이 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체감하고 있었다.


선희는 그 장면을 듣고 안대 너머로 고개를 돌렸다.

가이드가 손끝에서 부서질 듯 떨렸다.


선희: “…방금, 그 사람… 왜 그렇게 된 거지?”


자비는 담담히 이야기하였다.


자비: “아이즈는 시선을 타고 번져. 눈을 마주치는 순간, 어둠이 흘러들어 감염이 시작되는 거야.”

선희의 숨소리가 고르지 못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안대를 매만지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선희: “…그래서… 모두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거구나.”


이후로 망항시는 고개 숙인 자들의 도시가 되었다.


누구도 하늘을 보지 않았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길을 가던 이가 누군가와 스치면, 죄인처럼 즉시 고개를 숙였다.


공기는 눌렸고, 발소리는 사라졌다.


버려진 학교 운동장에는 바람만 불어왔고, 칠판에는 분필로 휘갈겨진 글씨가 남아 있었다.


“구원은 없다.”


바랜 글씨는 마치 도시 전체의 선언처럼 남아 있었다.


자비 일행은 도심 이곳저곳을 걸었다.


노블은 종이를 꺼내 글귀를 써보았으나, 공기 속 울림에 단어가 갈라졌다.

문장은 끝맺지 못한 채 흩어져 종이는 바람에 찢겨 나갔다.


프린터는 손끝으로 형상을 만들었지만, 눈을 감은 시민들 속에서는 그 형상조차 의미를 잃었다.

빛은 공기 속에서 부서져 허공에 사라졌다.


논알콜은 골목 어귀에 서서 노래를 흘려보냈지만, 목소리는 벽에 부딪혀 되돌아올 뿐이었다.

합창에 묻히기도 전에, 들을 귀조차 없는 도시였다.


콩은 마술을 펼쳤다.

작은 불꽃이 손끝에서 피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려는 눈이 없자 불꽃은 이내 바람에 꺼져버렸다.


그들의 힘은 존재했으나, 도시 속에서 무의미해졌다.


거리 곳곳에서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아무도 우리를 구할 수 없어.”

“이 도시는 끝났어.”

“희망은 없어.”


낡은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계음이 섞인 앵커의 목소리가 덤덤하게 울려 퍼졌다.


“아이즈 감염은 시선을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민 여러분은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말고, 가능한 한

고개를 숙인 채 이동하십시오. 정부는 망항시를 봉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라디오가 멈추자, 공간에는 더 깊은 정적이 깔렸다.

사람들의 고개는 더 낮아졌고, 발걸음은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때, 도시의 모든 전광판이 깜빡이며 광고가 사라졌다.

화면에는 미라뉘주의 얼굴이 나타났다.

한순간에 도시는 그의 목소리에 휩싸였다.


미라뉘주:

“너희는 서로의 눈조차 마주하지 못한다.

이것이 너희가 만든 세상의 민낯이다.”


목소리는 합창과 겹쳐 도시의 벽을 울렸다.


미라뉘주:

“아이즈는 병이 아니다. 심판이다.

너희의 두려움과 불신이 곧 나의 군단이다.”


그의 말과 동시에, 거리 저편에서 검은 눈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동공은 빛을 삼킨 채 번뜩였고, 합창이 다시 도심을 뒤덮었다.


자비 일행은 폐허가 된 광장에서 발을 멈췄다.


네온사인은 꺼진 채 검은 화면만 반짝였고, 전광판에는 여전히 미라뉘주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도시는 절망의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짧은 침묵 뒤에 다른 울림이 피어났다.

선희가 가이드를 움켜쥐며 낮게 중얼거렸다.


선희: “…이대로 끝낼 수 없어. 설령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는다 해도, 우린 버텨야 해.”

노블은 찢어진 종이를 다시 움켜쥐었다.


프린터는 허공을 바라보다 손끝에 힘을 모았다.


콩은 부서진 도구를 매만지며 고개를 들었다.


그때 논알콜이 목을 문질러대며 어색하게 웃었다.


논알콜: “근데… 원래 이렇게 스펙타클한 모험인 거야?”

모두가 그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긴장은 여전했지만, 잠깐이나마 공기가 조금 가벼워졌다.

자비가 낮게 이야기하였다.


자비: “희망은 작아도 된다. 다만 꺼지지 않아야 해.”

그 한마디가 어둠 속에 번졌다.


도시는 여전히 절망에 잠겨 있었지만, 광장 한가운데 선 그들만큼은 무너진 세상을 향해 다시 눈을 들고 있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