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 - Bless

Part 9 - 이어지는 마음 3

by The being

Part 9 - 이어지는 마음 3


달빛이 먹구름 사이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그친 도시는 여전히 젖어 있었지만, 그 젖음은 이제 차가운 적막을 품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부서진 유리 조각이 반짝였고, 물웅덩이는 희미하게 흔들리며 달빛을 갈라놓았다.

바람은 눅눅한 냄새를 실어 나르며 골목을 스쳤고, 그 바람 사이로 감염자들의 합창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보라… 보라…”


낮고 길게 끌리는 목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다.


그 속삭임은 물기를 머금은 벽에 번져 울렸고, 사람들의 내면을 더듬듯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 소리의 밑바닥에서, 이제는 다른 떨림이 은근하게 섞여들고 있었다.


노블은 젖은 종이를 품에 안은 채 폐허가 된 거리를 걸었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는 종이에 조심스레 펜을 움직였다.


노블: 길을 인도하라.


글귀가 새겨지자, 종이 위의 빛이 일렁이며 현실로 번졌다.

어두운 거리 위에 작은 길이 그려지듯 빛의 흔적이 나타났다.

돌더미 사이에서 은은한 광채가 화살표처럼 깜박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가리켰다.

노블은 숨을 몰아쉬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단순한 환영이 아니야. 누군가가… 분명히 기다리고 있어.”


그는 빛을 따라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마다 바닥의 웅덩이가 일렁이며 글귀의 파동을 반사했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멀리서 누군가의 울림과 공명하는 신호였다.


다른 쪽 골목.


프린터는 무너진 건물 벽 앞에 섰다.

손에 쥔 뢰브펜은 빗물에 젖어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벽에 펜을 그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선.

그러나 그 선은 곧 얽히고 합쳐져 새로운 형상을 이루었다.

도시의 윤곽과도 같은, 거대한 지도였다.

벽 위에 번져가는 그림은 한 방향을 가리키며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프린터: …누군가가 나를 이끌고 있어.


그는 벽에 손을 얹었다.

선이 떨리며 먼 곳에서 빛의 파동과 공명했다.

그것은 노블의 글귀였다.


프린터: 노블… 네 흔적이었구나.

그의 눈가에 미묘한 떨림이 번졌다.


안도와 긴장, 죄책감이 동시에 솟구쳤지만 그는 고개를 들어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낙서는 이제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살아있는 길의 메아리가 되어 그를 인도했다.


골목의 끝.


노블이 쓴 글귀의 길과, 프린터가 그린 벽화의 길이 마침내 겹쳤다.

빛과 선이 서로를 향해 뻗어오르더니, 한순간 강렬한 섬광이 일어났다.

노블은 눈부신 빛 속에서, 펜을 벽에 대고 있는 실루엣을 보았다.

프린터는 빛을 따라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았다.


노블: 프린터… 정말 너였구나.

프린터: 네 글씨, 멀리서도 느껴졌다. 네가 살아있다는 신호였어.


둘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자 한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기쁨과 안도가 차올랐지만, 곧 무거운 침묵이 뒤따랐다.


자비의 이름이, 말하지 않아도 가슴 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노블: 내가 더 강했다면… 자비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몰라.

프린터: …나도 그래. 난 늘 베껴내기만 했지. 창조하지 못하는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노블: 아니, 넌 우리에게 남길 수 있었잖아. 흔적을. 그게 없었다면, 난 이 길조차 찾지 못했을 거야.

프린터: 하지만 결국 자비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


비가 그친 거리에는 물방울만이 달빛을 반사하며 흔들렸다.

그들의 죄책감은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그 무게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작은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 순간, 감염자들의 합창이 요동쳤다.


사방의 골목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기어나오듯 몰려들었다.

젖은 아스팔트를 끌며 다가오는 발걸음마다 “보라…”라는 중얼거림이 달빛 속에 겹쳐 울렸다.

수십의 감염자가, 비에 젖은 시체처럼, 그러나 눈동자만은 섬광처럼 번뜩이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노블은 떨리는 손끝으로 종이를 펼쳤다.


노블: 멈춰라.


글귀가 번쩍이며 현실을 가로질렀다.

순간, 감염자들의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허공에 매달린 듯 움직임이 멈췄지만, 그들의 몸은 곧 비틀리며 저항을 시작했다.

삐걱거리는 뼈 소리, 끓어오르는 목소리. 글귀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노블: 오래 가지 못해…!


프린터는 이를 악물고 벽에 펜을 그었다.

거친 선이 그어지자, 벽이 울리며 불꽃이 솟구쳤다.


불꽃은 단순한 화염이 아니었다. 거대한 괴수의 형상을 띤 불길이 감염자 무리를 향해 굽이쳤다.

그러나 감염자들은 합창으로 서로를 묶듯 울부짖으며, 불길을 밀어내고 있었다.


프린터: 불꽃만으로는 꺾이지 않아… 노블, 네 글귀와 겹쳐야 해!


노블은 종이에 다시 글귀를 새겼다.


노블: 타올라라.


빛나는 글귀가 번져나가자, 프린터의 벽화 불꽃이 글귀의 명령을 받아 현실에서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길 위에서 불길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감염자들의 울부짖음을 짓눌렀다.

몇몇 감염자의 몸이 불에 휘말려 비틀리며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그러나 더 거대한 무리가 뒤에서 몰려왔다.

합창은 마치 천둥처럼 울려 퍼지며, 불길을 가르듯 어둠을 뚫고 다가왔다.


노블: 글귀만으로는 제압할 수 없어…!

프린터: 아니, 글귀와 그림은 원래 하나였어. 네가 쓰면 내가 그려낸다. 지금, 끝까지 이어 붙이자!

노블은 종이에 강하게 글씨를 새겼다.


노블: 무너져라.


그 순간, 프린터의 벽 위에 그려진 낙서들이 흔들리더니, 거대한 쇠사슬로 형상화되었다.

쇠사슬은 현실 속에서 뻗어나와 감염자 무리를 휘감았다.

합창이 끊기며, 감염자들의 몸이 바닥에 처박히듯 쓰러졌다.


노블: …됐다!

프린터: 아직 끝난 게 아냐!


남은 감염자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들었다.

프린터는 벽에 펜을 휘갈기며 날개 달린 창을 그려냈다.


노블은 동시에 종이에 글귀를 새겼다.


노블: 꿰뚫어라.


불타는 창이 현실로 솟구쳐, 감염자 무리의 중심을 꿰뚫었다.

폭발하듯 어둠이 갈라지고, 합창이 잠시 끊겼다.

두 사람은 헐떡이며 서로를 바라봤다.


주변은 불빛과 잔해로 뒤엉켜 있었지만, 그 속에서 분명한 감각이 있었다.

처음으로 서로의 힘이 제대로 합쳐져, 불가능했던 적을 밀어낸 순간.


프린터: …이게 우리가 함께할 때의 힘이구나.

노블: 그래. 이 힘으로, 길을 끝까지 써 내려가자.


숨을 몰아쉬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눈빛 속에는 아직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이 있었지만, 그 위에 다시금 결의가 얹혔다.


노블: 나는 글귀로 길을 써 내려가겠어. 끝까지.

프린터: 그리고 나는 그 길을 끝까지 그려낼 거야. 베껴내는 것이라도, 세상을 붙잡을 수 있다면.

노블: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희망을 쓸 수 있어.

둘은 어둠 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뒷모습은 무거웠지만, 함께였기에 흔들림은 없었다.

멀리서 감염자들의 합창이 다시 고조되었고, 고층 건물 위에는 불길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