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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Nov 22. 2018

행복 편

용희사전 23

행복


누구나 행복한 삶을 바란다.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노력한다. 하지만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우리 사회는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기에는 그전에 해야 될 일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일까? 물론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실이 불행할수록 우리는 더욱 강렬히 행복을 추구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면 행복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행복. 너무나 가지고 싶은 삶의 원천. 오늘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명시되어 있다. 

행복은 느껴지는 것이고 또는 그러한 것을 느끼는 상태이다. 


요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취업대란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사회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취업대란이라.. 일을 못하면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럼 당연히 행복하지 않게 된다.


사실 행복을 논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생존권이 보장이 되어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세끼를 꼭 먹어야 하고 안전하게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해소해야 하는 욕구가 있다. 


이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다. 


헌데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불안정하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일을 할 나이가 되었는데 취업이 안 되면 불안해진다. 이제는 나이가 차서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는 것도 눈치 보이고 주변에서도 그리 곱지 않게 본다. 


그래서 젊은 청춘들은 오늘 하루도 힘들다. 기본이 되는 생존권을 획득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겨우 취업을 하게 되었다. 이제 생존권을 쟁취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하다. 일이 너무 힘들다. 힘


들어도 적당히 힘들어야지 야근에 특근에 주말 근무에 일이 넘쳐난다. 


내 생존권을 연명해 나가기 위하여 일만 하게 된다. 


그래서 그만둔다. 생존권이고 나발이고 죽을 것 같아서 그만둔다. 


생존권만 있다고 해서 행복하지가 않다. 도무지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다. 


부모님 세대는 그런 말씀들을 하신다. 우리 때는 운을 띄우시면서 좋은 직장 들어가면 평생을 바쳐서 일을 했다고 나보다는 가족이 우선이었다고 말이다. 


안다. 너무나 잘 안다. 


우리 세대와 부모님 세대의 결정적인차이를 생각해보면 일의 힘듦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다만 희망이 다른 것 같다.


부모님 세대는 사실 경제성장의 부흥 시기라 물가도 여러 가지의 희망을 가지셨던 것 같다. 지금의 고생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있었던 시대였다. 


지금은 정체기다. 더 이상 경제성장이 크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본 생존권을 유지하기조차도 너무 벅차다. 


거기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은 젊은 세대를 더욱 암울하게 만든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는 현재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이 직장에 계속 다니면 같은 직장에 과장, 팀장, 부장이 나의 모습인데 그 모습은 내가 원한 모습이 아니야.’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어쩌면 젊은 세대가 현실에 집중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부모님 세대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 환경적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가 없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현재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높은 교육 등을 통하여 깊은 사고를 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행복을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아주 좋다고 생각하지만 도저히 현실이 그것에 따라 주지 않는 것 같다. 


과거의 행복의 기준과 현재의 행복 기준은 분명히 변화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은 과거의 행복 기준에 머물러 있는 어른들의 기준으로 행복의 척도를 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라 젊은 세대들은 행복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기가 힘든 것 같다.


나는 절대적으로 젊은 세대만을 응원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너무나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좋은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레 그러한 좋은 것들을 보게 된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행복의 기준은 좀 더 올라가게 되는 것 같다.


헌데 도무지 현실에서 따라주지 않으면 행복하지가 않다. 


결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정을 이루어야지만 한다고 이야기들 하신다. 


냉정하게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젊은이가 얼마나 될까?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은 엄청난 돈을 대출받는다. 


빚을 져가면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그만큼 지불해야 되는 것이 많다. 


그럼 그렇게까지 해서 결혼을 했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낄까?


결혼을 하면 분명 행복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데 그 행복을 얻기 위하여 또 지불해야 되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안다. 


이제는 결혼이 절대적인 생활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재 저 출산 문제가 많다고 한다. 어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리 때는 단칸방에서 시작했다는 말도 하신다. 


그래 단칸방에서 시작했다고 치자. 과연 그 부부를 시댁이나 친정에서 곱게 볼 것인가?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사실 이러한 것을 시경 쓰는 것도 좋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단면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는 현재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에게 결혼을 강요할 수 없다. 국가의 구조적인 문제를 일일이 나열하고 싶지는 않지만 취업조차 쉽지 않은 국가에서 결혼을 논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묻고 싶다. 부모님 세대는 힘들 일 안 시키려고 자녀들 교육을 시킨 것 아닌가?


그렇게 배워온 학생들이나 취준생들이 과연 흔히 말하는 3D업종 일을 하려 하겠는가?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 일도 마다 안 하고 하려는 젊은이들도 많다. 한데 과연 이들을 인정하느냐 하는 것은 또 생각해 볼일이다. 


사회는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데 우리 사회는 극심한 엘리트주의 아닌가?


과연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 가?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세대가 행복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안타깝다. 


행복의 기준은 분명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회는 적어도 행복을 안겨 줄 수는 없더라도 그 사회 안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멀리에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기본 생존권만 주어줘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가져야 행복한 사람도 있고 꿈을 이루어야만 행복한 사람도 있다. 


건강한 사회는 그 사람이 누리고 싶은 행복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에게 잔소리만 하지 말고 가끔은 진심 어린 위로를 그리고 응원을 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행복은 꼭 많은 것들이 나에게 주어져야지만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실 행복은 본인의 만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만족은 현실에 대한 만족감 일수도 있고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에 대한 만족감 일수도 있다. 


사회는 국민들에게 분명한 행복해야 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는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그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신이 속한 단체 혹은 집단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개혁을 하거나 나가는 수밖에 없다. 


개혁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나가게 된다. 


그럼 사회는 말한다. ‘당신을 대체할 사람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대체되는 인력으로 돌아가는 구조의 사회는 획일화된 사회이고 발전을 야기하기에 힘들다. 인간은 각자의 고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각자의 고유의 능력을 키워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마치 부품처럼 대체가 쉬운 사회가 아닌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기에 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앞서 얘기했듯이 가진 것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안다. 가진 것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분명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사람의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데 사회가 대변하는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에 맞춰 살 필요 없다.


우리는 분명하게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찾아야 한다. 


이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회 탓만 할 수 없다. 자신의 행복의 기준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 가든지 불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자신의 행복을 쟁취해 나가기를 바란다. 거대한 행복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도 그 삶 안에서 온전하게 행복감을 느끼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모두가 행복해져서 그 행복을 개인만이 누리는 것이 아닌 모두가 그 행복을 공유하는 사회가 그리고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모두의 행복을 바라며 행복 편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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