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 막 바뀌고 있던 즈음의 새벽, 철없는 척 살아가는 나는 철이 아직 없을지도 모르는 네 순수한 질문 하나에 말문이 막힌 차였다.
“당신은 그림 볼 때 무슨 생각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한다는 대답 따위를 할까 싶다가, 대가 없는 질문에 그래도 어른스럽게 가치 있는 대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이기적인 핑계로 도망쳤던 곳이었다. 갤러리는 아주 조용하고 아주 외롭고 아주 그럴싸했으니까. 울적하니 죽고 싶어서, 나 혼자 산에 올라갔다고 말하는 것보다야 백번은 나으니까. 그래서 나는 굳이 사방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그곳을 찾았던 것도 같다. 나 갤러리에 갔어, 울적하고 죽고 싶어서.
처음 봤던 전시가 무슨 주제의 기획전인지, 누구의 그림이 어떤 식으로 걸려있었는지, 내가 무슨 작품 앞에 멈춰서 내 상념을 내던지고 혼자 훌쩍였는지. 그때가 스물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 어느 것 하나도 뚜렷한 것은 없다. 그곳에 있는 전부는 이해 안 가는 곡선들의 향연 같았고, 복잡한 것이 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과 비슷했고, 그럼에도 모든 걸 뒤로 하고 나오는 발걸음은 제법 가벼웠던 것도 같다. 그렇게 조금 세상이 뒤틀린 날이면 나는, 또 그만큼 뒤엉킨 것들을 찾아 숨기로 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꼴에 읊고 싶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미술 자체가 좋아졌는지 복학하고는 미술 전공 수업의 한 자리를 굳이 차지했다. 현대 미술은 이런저런 이유로 복잡하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공자들한테, 작품을 보고 무슨 감정이든 느꼈으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너스레나 떨면서 말이다. 쪽팔려라! 근데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글쎄 나는 호크니의 첨벙을 보고 이유 없이 좋았다니까? 그럼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가 생각 없이 작품을 보기 시작한 것이. 과제를 핑계로 미술관을 가야 했고 진짜 관람객이 되어 그림을 관찰하게 된 것이.
시드니에서 피카소 작품 앞을 삼십 분 동안 떠나지 못한 날이었다. 거봐, 내 말이 맞지? 큐비즘이고 뭐고 그냥 이렇게 압도당한다니까. 이거면 충분하잖아! 삼 년은 훌쩍 지났지만, 서당 개 한 마리는 혼자 우쭐거리며 짖어댔다. 어린 날 부렸던 객기를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아해도 돼서인지, 미술 작품에 무엇을 느꼈단 사실 자체로 괜히 뿌듯해서인지, 나는 이토록 소름 끼치게 그날을 잊지 못한다. 물론 그 옆에 사랑하는 프란시스 베이컨도 있어서 더 벅찬 순간이었겠지.
습관이 된 미술 여행은 회화보다는 조각을 더 자주 찾아다니게 만들었는데, 작품만큼 작품을 전시한 공간에도 설렘을 느끼게 했다. 안도 다다오가 건축한 유민미술관은 아직까지 내가 제주도에서 제일 사랑하는 곳일 만큼. 핑계는 결국 계기로 이어졌고 하나씩 쌓여 기록이 됐다. 그럼 이건 울적하고 죽고 싶었던 날들로 가득 찬 달력일까? 아니야, 이제 그림 볼 때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했으니까. 아무튼 늦었지만 이제라도 솔직히 대답하자면, 나는 그림 볼 때 아무 생각도 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