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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진 Jun 22. 2024

어차피 나는 해내지 못했을 테니

의무적으로 귓구멍에 쑤셔 넣은 이어폰이 오늘따라 불편하다. 그 너머로 들리는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노래까지 거슬리는 걸 보면, 하루 내내 쉬어댔던 한숨은 다분히 의도적인 거였나 보다. 또 무언가 상념 거리가 있다는 내 잠재적 존재의 불쾌한 신호다. 이상하게 온종일 짜증 나더라니. 괴롭지만 다시 괴로워질 차례구나, 이런. 가슴팍에 이상한 기계를 붙이고 내 심장의 태동을 체크한다, 72시간. 차라리 숨이 멎길 바랐던 스무 살의 내가 낯설어진 나는 오늘도 간신히 숨을 뱉어낸다.

후, 하, 후우. 그리고 또 후.


이건 한숨이 아니다. 몇 시간 전에 갇혀있던 동굴에서도 간신히 해내었던 호흡이다. 카테터의 진동을 느끼며, 눈 감고 둥 둥 떠다니는 소리를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던 곳. 검사실 너머에서 곧 울렁거릴 거라는 목소리에 이제는 울렁거리지 않는 기억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챙겨뒀던 이름 하나 꺼냈다. 잠깐이지만 오랫동안 적어보고 싶었던 이름. 하나를 적고 여러 인칭으로 불러댔던 이름. 나이기도 했던 네가 다시 이름이 되어야 했던 이름. 그 이름을 나는 기어코 사랑해 냈을까? 울렁이다가 몸속으로 퍼지는 건 내가 뱉어본 적 없는 대사 몇 줄이겠지. 뭐 그리 어렵다고 대답하지 못할까.

후, 하, 후우.


K. 2분 25초간 흘러나온 노래를 멈추고 이번에는 모든 소리를 귀를 열어 흘려보낸다. 나만 빼고 나를 통과하는 전부가 자유롭다. 나를 떠나간 모두가 그러했고 그러한 것처럼. 그래도 미워하지 않을게, 어차피 나는 사랑해내지 못했을 테니. 바람 따라 몸에서 빠져나온 문장도 함께 날아간다. 나도 이제 자유로워지는 거야? 내 심장이 내게 묻는다. 아, 추상적 표현이 역겨워서 나도 모르게 웃는다.

그리고 또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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