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회에 가지 않는 이유
본 글은 개인적인 일상을 공유하는 것일 뿐,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의도 및 특정집단에 대한 전도의도 또한 없음을 밝힙니다.
나는 세상 빛을 보기도 전인 태아시절부터 교회를 다녔고 초, 중, 고 시절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교회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정도로 예배와 모임활동, 봉사에 누구보다도 열심을 다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충남의 한 대학교로 수련회를 갖던 3박 4일 동안 눈물, 콧물을 처절하게 쏟아가며 나의 15년 인생을 절절하게 회개했고 처음 방언이라는 것도 해봤다. (대체 15살 아이가 무엇을 그렇게 회개하고 소리쳐 기도했을까.. ) 울며 기도하다 눈을 뜨면 마치 예수님이 나를 꼭 안아주는 것 같은 포근함을 느끼며 앞으로 내 삶은 오직 주님께만 속한 것이라 뜨거운 다짐을 했었다.
그때의 나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렇게 고등학생, 대학생을 지나와 사회에 나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수년 후까지 마치 목사의 아들인 양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헌신적으로 하면서 살아왔다.
(찬양팀, 차량지원, 식당봉사, 청소, 성가대 등 교회 안은 물론이고 교회 밖 봉사활동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아들~ 요새 교회는 가니?” 는 사실, 어머니가 늘 형에게 하던 질문이었다.
나에겐 물어보실 필요도 이유도 없었고 뭐 굳이 묻지 않아도 늘 갔으니까. 그랬던 나였지만 지금은 교회에 잘 나가지 않는다.
여러 가지 핑곗거리가 있다. 시간이 없어서, 주말에 일 때문에, 아이의 학교행사 때문에.. 뭐 다양하다.
그러나 진짜 믿음을 가진 이에게는 그저 변명일 것이다. 물론 나도 인정한다.
변명을 늘어놓아서라도 교회를 잘 안 나간다.
왜일까?
사실 내가 교회를 안 나간다고 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내 아버지 되신 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매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도 하며 내 삶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그분을 위해 쓰여지기를 마음깊이 갈망하고 있다.
요 몇 년간 교회를 기피하는 이유는 사람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파, 공동체 안의 사랑을 확인하고 확장하며 세상과 사회에 대한 봉사와 사회적 책임 또한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다닌 교회는 그렇지 못했다. (비단, 내가 다니던 교회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출석하던 교회가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까지는 자세히 쓸 수 없지만, 교회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해결에 다가서는 방법이 매우 틀렸었고 그 방법과 과정들 속에 소위 직분을 가진 윗세대 믿음의 어른들의 행동은 같은 믿음을 가진 나에겐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었고 이들과는 조금도 더 함께 예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다.
20년, 30년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처럼 살았다 자신했던 그 어른들…
장로, 권사, 집사 다양하게도 직분을 차지한 그 어른들의 욕심, 물질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그들의 믿음과 신념, 그리고 나약해진 신념 속에서 뱉어지는 젊은 세대를 향한 비겁한 편 가르기,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멸시하고 정죄하는 그들의 뱀 같은 혓바닥은 나와 내 가족이 교회를 떠나게 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했다.
그들에겐 하나님이라는 삐까번쩍한 간판만 있을 뿐, 교회 안에서 편을 가르고 누군가를 멸시하고 조롱하며 욕해대는 모습은 차마 내 다음 세대가 될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떤 장로님이 나에게 전화를 해 왔는데, 예배 앞 찬양시간에 xxx가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찬양을 해라, 저런 메세지가 담긴 이런 기도를, 이런 예배인도를 해야 한다 라며 어떤 주장을 강요해 오는 꼴은 나를 더 이상 예배에, 교회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그즈음에는 이미 찬양인도를 더 이상 하지 않기도 했지만 공동체 안의 세력다툼에 의해 봉사를 강요받곤 했다)
매주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서로 손가락질, 욕질을 해가며 네가 나가라 그 목사와 함께 꺼져라 등등, 고성방가가 오가는 모습은 분명 하나님도 기뻐하실 일이 아니었을 것이고, 그들 간의 분쟁이 법적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하나님의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문제는 하나님의 방법과 뜻을 구해야만 할 일이었다. 그리고 해결의 때는 분명 그분이 아셨을 텐데, 욕심 많은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교회에는 분열과 해체만이 남았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 (나와 비슷한 때에 교회를 떠나온 어떤 형님은 교회에는 교인만 있어야지 집사도 권사도 장로도 필요 없다는 이야길 남겼다. )
젊은 시절 뜨겁게 예배와 교회 봉사에 집중했던 스스로의 삶이 부끄럽지 않으려 봉사하던 팀에서도 교회에서도 도망쳐 나오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최초의 한인교회로 뿌리를 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꽤나 규모 있는 한인교회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또 흐른 지금은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달에 한 번 정도 나간다.
나를 위해서도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도 예배의 처소에 형식을 지켜 참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을 모르지 않기에 식은 마음을 조금은 데워가며 종종 나가려 한다.
교회도 그때와는 조금 달라졌다. 문제의 중심에 있던 당시의 목사는 교단에서 쫓겨나듯 그만두었고 그와 뜻을 같이했던 부목사라던지 성가지휘자, 그 외 다수의 청장년들은 일본 어딘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뜻을 함께 하던 장로들은 여전히 어깨를 당당히 펴고 교역실 소파에 앉아있는 모습은 썩 보기에 좋지 않다)
새로운 사람이 많이 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현재 교회에 재직 중인 교인들은 교회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며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새로운 시작을 선언한 이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역할을 회복하고 사회적인 책임 수행을 위해서도 양적성장은 지양하고 사회적 윤리를 준수하며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동반된 소통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이 글을 써 내려가면서도 스스로에게 “참 핑계 좋다” 며 괜한 핀잔을 준다.
(실은, 교회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핀잔받을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며칠 후면 또 한국에 계신 어머니한테 분명 전화가 올 것이다.
“아들~ 교회는 가니?”
(안타깝게도 일요일에 후쿠오카로 출장을 가지만..)
일단은 안심하실 수 있는 대답을 에둘러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