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미순, 2023
1.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책 제목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다.
책을 읽기 전 유추해 보면,
'우리'가 등장할 것 같고, '겨울'이 등장할 것 같다. (그것이 계절로서의 겨울이든 내면, 심리적인 겨울이든)
또, '지나온'이라는 사건이나 계기가 등장할 것 같다.
즉, 우리가 지나가든, 겨울이 지나가든 말이다.
마지막은 '방식'인데, 아마 이 '방식'이라는 단어가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 혹은 사용해야만 하는지.
자. 이제 책으로 가보자.
2. 소설
소설을 잘 읽기는 하는데,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수필을 읽을 때도 비슷한 것 같지만..
일단, 이 책은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다.
세계문학상이 뭐지 하고 찾아보니,
세계일보에서 수상하는 작품이란다.
출판사는 나무옆의자라는 곳인데,
불편한 편의점을 읽을 때 본 출판사인데,
자세한 출판사의 배경이라든가 지향점은 잘 모른다.
저자는 문미순 작가로서 2013년 문화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음. 일단 이러한 정보들을 통해서
저자의 의도나 책의 내용, 결? 등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니 바로 책의 내용과 결론으로 넘어가자.
3. 내용
내용은 책을 읽기 전 예상한 것처럼
'우리'가 나온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다.
책은 1, 2, 3과 같이 구분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가령, 1이 여자 얘기이면 2가 남자 얘기인 방식이다.
그리고 이들이 직면하고 있는 '겨울'이 나온다.
그 겨울이란 것은 '돌봄'이다.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돌보고, 가족을 돌보고, 부모를 돌보는 삶에서 큰 어려움을 경험한다.
남자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아버지로 인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영케어러(젊은 혹은 자녀가 어른, 부모를 돌보는 것)로서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다.
소설은 여자의 엄마. 남자의 아빠에 대한 돌봄이 제일 큰 화두로 보인다.
뭐, 여자의 경우는 엄마보다는 자신에 대한 돌봄이 더 큰 화두인 것도 같지만.
아무튼, 자기 돌봄이든, 부모 돌봄이든, 이웃 돌봄이든, 직장 동료 및 지인을 돌보는 것이든 이야기의 모든 돌봄은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내용은 '겨울=돌봄'을 매우 적나라고, 쓰라리게 보여주면서 다음 스탭인 '지나온'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내가 집중한 것은 왜. '지나간'이 아닌, '지나온'일까라는 것이다.
지나가다와 지나오다의 차이는 뭘까.
사전적 정의를 찾아봤다.
'지나가다'는 시간이 흘러가서 그 시기에서 벗어나고, 어떤 일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오다'는 어디를 거치거나 가로질러서 오거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슨 일을 겪어 온 것을 의미한다.
음. 잘 모르겠지만,
지나가다는 좀 내버려 두고, 끝내고, 휙 지나가버리는 느낌이다.
반면, 지나오다는 뭔가 끌어안고 겪어내고, 내가 지나온 그 대상을 나의 길에 포함하는 느낌이다.
음? 아무튼 그렇다.. 지나가다 보다는 지나오다가 조금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런 나의 멋대로 해석을 좀 적용해 보자면
소설의 두 주인공의 얘기는 '겨울'을 '지나온'다.
겨울 속에서 스스로와 혹은 다른 누군가를 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지나온다.
그 지나옴이 때론 구질구질해 보이고, 처참해 보이고, 이게 뭐지 싶음에도, 그들은 지나감보다는 지나옴 속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소설의 '우리'는 '돌봄이라는 겨울'을 '지나온다'.
자. 이제 '방식'에 대한 얘기이다.
지나옴을 설명하면서 짧게 설명했지만,
그들의 방식은 지나감보다 지나옴에 가까운 방식이다.
나는 소설을 읽으며 이러한 방식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여자 주인공이 자신을 돌보기 위해 죽은 엄마를 집에 놔두는 방식.
남자 주인공이 아빠의 재활, 간병을 위해 어릴 적부터 자신을 삶을 거의 돌보지 않고 아빠에게 헌신하는 방식.
자신이 살기도 바쁜데 옆집 여자 주인공에게 왜인지 살가운? 꽤나 따뜻하게 대하는 남자 주인공의 방식.
세상 관심 없고, 냉소적인듯하지만 사실은 따뜻하고 누구보다 정 많은 여자 주인공의 삶의 방식.
여자, 남자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위의 이웃들이. 주인공의 가족들이. 지인들이. 자신을 돌보는 혹은 보호하고 지키는 방식.
무엇이 맞다고, 혹은 무엇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또, 좋은 방향과 맞고 틀림이 없다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문제지만, 답을 내려야 하는 문제 이긴 한 것 같다.
이것은 비단 소설에서 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시대는 정말 '각자도생'의 시대이다.
밥이 없어서 굶어 죽는 의미의 '생존'이 필요한 시대는 아니지만 또한, 수많은 '생존'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때론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는 시대이다.
또한, 이 시대라는 것을 조금만 넓게 생각해 보면(전 세계로, 혹은 가려져서 안 보이는 어딘가, 누군가로) 사실, 밥이 없어서 굶어 죽는 '생존'이 여전히 너무 절실히 문제 되는 세계와 시대이다.
소설은 이런 시대와 세계 속의 돌봄을, 겨울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방식. 지나옴에 대한 방식을 이야기한다.
어렵다.
돌봄에 대해. 지나감이 아닌 지나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냥 우리가 흔하게 뻔하게 듣고 내뱉던 말처럼 살면 안 되는 것인가.
'세상이 그런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어'
'그냥 나 하나 바르고 정직하게, 남한테 피해 안 주면서 살면 되지 뭐'
'모든 건 케바케고, 사바사야. 살인하고 뭐 이런 중대한 거 아니면 각자 결정하고 선택하는 거지 뭐'
이렇게 내버려 둘 수 있을까. 내버려 둬도 되는 걸까. 타협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것 말고 우리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아니. 이게 왜 타협일까. 그냥 사는 최선의 삶이지.
생각이 둥둥 떠다닌다.
마지막으로 문득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강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서 적어본다.
'우리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어'
'강의를 시작하며 상상한 이야기나 논의한 원칙들에 대해 결론을 짓지 못했지'
'아리스토텔레스나 로크, 칸트, 밀도 그 오랜 기간 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하버드대학 극장에 모인 우리가 어떻게 한 학기 만에 풀겠어?'
'원칙은 각자가 알아서 할 문제고 거기에 대해 토론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이치를 따지는 건 불가능해'
거기에 대해 저는 이런 대답을 내놓고 싶습니다.
"이 문제들이 아주 오랫동안 논의돼왔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제기 돼왔고 사라지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이 비록 해결은 불가능하지만 이 문제들을 피할 수도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그 문제들을 회피할 수 없는 이유,
그 문제들에서 도망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