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옷을 입은 '블루'가 그렇게 이상해?
이번 편지는
가장 '붉은' 옷을 입은 '블루',
무지개 안에서 꽃을 피운
당신에게 적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하이델베르크, 슈프레발트까지 긴 여행길을 걷는 동안 세상과 나, 그저 이 두 가지를 '흑과 백'처럼 바라보며 시선을 좁혀왔습니다.
단색으로 바라본 세상은 참 심심하고 단조롭지만, 그래서 본질에 집중하게 합니다.
마치 제가 당신을 붉은색의 블루가 아닌 그저 웃음 많은 사람으로 본 것처럼요.
참 긴 발자국을 남기며 베를린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여유롭지는 못한 여행길에 조금은 지쳤나 봐요. 공원의 풀밭에 돗자리도 없이 누워있는 사람들이 부럽도 얄궂게 느껴집니다.
어떻게 그렇게들 잔잔한 마음들을 가졌을까요.
'블루' 당신을 만나기 하루 전, 저는 왜 베를린이 무지개로 가득 찼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어요.
무지개는 자주 보이지만 잡히지 않고, 만들 수 있지만 우연히 만나길 바라는 것이잖아요.
그런 무지개가 도시의 곳곳에 떠있으니, 잔뜩 흑백으로 가득 찬 저에겐 야속할 수밖에요.
그래서 저만 이 무지개를 놓칠 수 없다는 마음에, 오늘은 작은 보라색 양말을 챙겨 신고 나섰습니다.
저의 작은 입장권이 당신에게 닿았을까요.
피보다도 끈적일 것 같은 붉은색 옷을 입은 당신이 다가오네요. 그리고 이렇게 소개하며 온갖 색으로 가득 찬 무지개 안으로 절 끌고 갔습니다.
놀라지 말아요.
붉은 옷을 입은 저는 '블루'입니다.
멋진 양말을 신었네요?
그럼 저랑 같이 가요.
베를린이 무지개로 가득 찬 이유는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SD)이기 때문이었습니다.
CSD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를 정신병으로 취급하고 차별받던, 그 시대상을 비판하고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리고 자기만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행사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시대의 차별에 대항하는 그 무지개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블루' 당신은 제가 여러 색깔에 물드는 동안 제 손을 놓지 않았어요.
그렇게 우리는 무지개의 가장 중간에 올랐습니다.
닿지 않을 것 같던 무지개는 그렇게 제 손에 잡혔습니다.
잔뜩 무지개 빛 물감에 옷을 적셔가고 있을 때, 당신에게 이야기했죠.
"그런데 저는 이성애자예요. 혹시 불편하실까 봐서요."
당신은 짓고 있던 웃음을 결코 거두지 않고 말합니다.
"Jauney 우리 무지개를 일곱 가지 색깔로 나누지 말아요."
"우리는 그저 친구로 하나의 색깔을 가졌잖아요."
잔뜩 무지개로 물들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하늘을 잔뜩 바라볼 수 있는 기찻길 위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잔뜩 생각에 잠겼어요.
당신이 웃음에 숨겨 전달했던 그 말들을요.
'블루', 당신을 만나기 전 나의 베를린은 그저 흑백에 갇힌 체스판과 같았어요.
당신이 조금은 격하게 칠해준 그 색깔들은 2차원 평면에서만 움직일 것 같던,
체스 말들을 눕혀놓고 뒤집어 놓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잔뜩 칠해지고 집에 가는 길,
다시 푸른빛 하늘이 보이고 베를린의 석양이 보입니다.
오늘은 온몸에 묻어있는 이 무지개를 덮고 잠에 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