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웃음으로 표현하면 어때?
이번 편지는
인도의 화장터,
바라나시의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당신에게 적습니다.
인도에 도착해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극성인 택시기사들과의 신경전 이후 오물이 즐비한 거리를 걷고, 소가 활개 치며 사람을 공격하는 문화를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서야, 저는 인도에서 첫 웃음을 짓습니다. 남의 일에 큰 관심을 갖고 달려들고, 외국인만 보면 사진을 찍으려 달려드는 인도 사람들이 이제는 밉지 않아요.
그렇게 바라나시에 도착했습니다.
바라나시를 맨몸으로 맞이한 것은 아니에요.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 갠지스강 옆에 있고, 하루에서 수십 번의 화장이 이루어지는 화장터와 그것을 기리는 의식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미리 공부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바라나시에는 죽음과 웃음이 소리로 섞인다는 것을요.
저한테 이것은 너무나 어려웠어요.
그 혼란 속에서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바라나시의 작은 골목의 책방지기입니다.
하지만 하루에도 6시간을 노래한다고 하였으니, 음악가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는 좁은 골목을 작은 우쿨렐레와 함께 채우는 당신의 목소리에 집중을 합니다.
단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이지만, 즐거운 노래인 것은 당신의 표정을 보고 알 수 있네요.
잔뜩 찡그리며 제가 묻습니다.
어떻게 이 도시에서 즐거울 수 있죠?
이 질문을 예상이라도 한 듯,
당신이 저한테 되묻습니다.
죽음에 웃어본 적이 없죠?
단 한 번도, 죽음과 웃음을 같은 페이지에 두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향한 인간의 얼굴은 언제나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해 맞이하는,
발버둥 치다 지쳐서 놓아버린,
그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 불편한 고집에,
음악가 당신은 다시 뜻 모르는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를 마치고 다시 이야기하죠.
이곳 바라나시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장례와 화장이 진행되고,
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오는 곳입니다.
어머니의 강에서 온전한 다음 생을 맞이하러요.
.
아직도 그들이 슬픈가요?
당신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갠지스 강으로 향합니다.
여전히 시끄러운 사람들과
연기가 가득한 화장터가 보이지만,
한 가지
안 보이던 것이 보여요.
그렇게 오물로 가득 차 보이던 갠지스강과
그 안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평온함과 웃음이 가득 차 있네요.
그리고,
새하얀 소 한 마리가
그 강으로 다가섭니다.
마치
다 꺼진 불에 숨을 거둔
많은 사람들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