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이 아름다운 것이 나를 살게 할 때 |7

알마 타데마 <봄(Spring)>

by Summer
"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가끔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이 문장이 떠오른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다. 이렇게까지 애쓰는 이유가 혹시 잘못된 방향은 아닐까 해서.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지금의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돈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솔직한 거 같고, 꿈 때문이라고 말하면 아직 증명하지 못한 말 같아서 그 사이 어딘가에 말을 걸어둔 채 살아가고 있다.


문과와 이과를 모두 공부했지만 마음은 늘 문과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정확한 사람을 원하고 있는데, 나는 왜 느리고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들을 자꾸만 붙잡고 있을까. 그게 나답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돈은 있어야 하고, 명성은 있으면 좋고, 즐거움은 잠깐이고, 사랑은 어렵다.


그중 무엇을 택해야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결국 모든 질문은 다시 같은 곳으로 돌아온다. 무엇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던 날, SNS의 알고리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을 내게 건넸다.


의학, 법, 비즈니스, 공학은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고귀한 일들이야. 그러나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야.
- 죽은 시인의 사회 -


이 문장은 정답처럼 다가오지는 않았다.


대신 내가 왜 쓸모와 효율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에 자꾸 마음이 가는지를 조용히 설명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삶의 이유가 꼭 성취나 결과가 아니라,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걸 붙잡고 살아도, 너는 틀리지 않았다"는 허락 같은 위로였다.


생각해보면 산업혁명 이후의 사람들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기계는 하루 아침에 삶을 편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더 불분명해졌을 테니까.


그 시대, 갑작스럽게 부를 쌓은 신흥 부르주아들은 어쩌면 그 답을 찾기 위해 아름다움을 좇았을지도 모른다. 고대 신화와 이상화된 세계, 낭만과 질서가 담긴 그림들. 그들은 그 그림들 안에서 삶을 버티는 힘이 아니라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 시대, 아름다움과 낭만을 가장 성공적으로 그려낸 화가가 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산업혁명의 중심지인 영국에서 사랑받으며 살았던 화가, 알마 타데마.

게티 센터에서 유독 많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는 작품이 있다면, 바로 그의 <봄(Spring)>이다.


Spring, 1894


그림 앞에 섰을 때, 나는 설명보다 먼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의 배경 속에서 아이들이 꽃을 들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대리석은 햇빛을 머금고, 도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다. 그 장면은 아무 생산성도 없고, 아무 목표도 없지만 그 자체로 충분히 살아갈 이유처럼 보였다.


이 세계는 철저한 고증 위에 세워진 상상이지만, 폼페이 벽화와 신전 부조, 대리석의 질감과 꽃의 종류까지 현실에 있을 법한 밀도를 지닌다. 그 사실적인 묘사는 역사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던 세계처럼 느껴졌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축제의 인물들 속에 그의 아주 개인적인 얼굴들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구경꾼은 음악가 친구와 그의 가족이고, 화면 한가운데 꽃을 든 소녀는 그의 딸이다.


이 거대한 고전의 무대는, 결국 아주 사적인 사랑으로 완성된다. 이런 사랑과 낭만의 가치는, 1900년대 다시 소환되어 초기 헐리웃 영화 <클레오 파트라>의 장면에도 스며든다.


"태양이 꽃의 화려한 색채를 창조하듯, 예술이 우리 삶에 색채를 부여한다"는 문장과 함께.




삶의 이유란 이렇게 거창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아름다움과 낭만을 전하며 인정받은 알마 타데마. 그도 처음부터 화가의 길을 가진 않았다. 부모의 뜻을 따라 법학을 공부했지만 건강 악화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에야 미술이 허락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 이후 그는 다시 살아났다.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한 세계를 끝까지 그려냈고, 부와 명성은 그 결과로 뒤따라왔다. 그것이 목적이었는지, 결과였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삶을 유지하는 일과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일.

그 둘은 여전히 나에게 서로 다른 방향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자주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보다 조금은 알 거 같다. 의미는 처음부터 확신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끝까지 놓지 못하는 것들 위에 나중에야 조용히 내려앉을 때도 있다는 걸.


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그 말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이제는 가능성을 넓혀보려고 한다. 삶의 이유가 반드시 쓸모 있거나 설명 가능할 필요가 없고, 예술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벌써 연말이네요! 2025년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요..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연말 보내시기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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