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느낌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합니다. 벅차면서도 조심스럽고 신기하면서도 어색했습니다.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으면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아기 냄새를 맡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고요. 왜 어른들이 아기 냄새가 그립다고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막 태어난 아이는 작고 가벼워서 오래 안아도 힘든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쌓이는 만큼 피곤도 쌓이고 아이 몸무게도 쌓이면서 품에 안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잠이 부족한 일상과 내 시간이 없는 퍽퍽함 속에서 아이를 안는 일은 더 이상 뭉클하지도 벅차지도 않았습니다.
아이가 배앓이라도 하면 밤은 지옥 같은 시간이 됩니다. 자지러지게 울어 젖히는 아이를 안고 이 상황을 버텨야 하죠. 아이도 울고 엄마도 울고 괴로운 시간입니다. 달래도 달래 지지 않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리면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할 정도로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습니다.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 아이 입을 손으로 막고 싶다. 이불로 덮어서라도 아이 울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아이를 안전한 곳에 내려놓고 몇 분이라도 다른 곳에 가서 마음을 달래는 게 좋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스린 후 아이를 다시 보러 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 몇 분 더 운다고 큰일 나지 않더군요. 어차피 안아줘도 우는데 잠깐 내려놓고 엄마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낫습니다.
‘아이가 우는 건 당연한 거야.’
‘우선 내 마음이라도 진정하자.’
‘아직 미숙한 아이니까 내가 필요한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 평정심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인생에서 아주 긴 프로젝트입니다. 엄마의 노력과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투자해야 하죠.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씻기 같은 일은 1차적 육아, 육체적으로 힘든 육아입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아이의 정신적 성숙을 위한 2차적 육아, 훈육까지 해야 합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15년~20년은 엄마의 노력과 수고가 들어갑니다. 품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입니다.
육체적 육아는 오히려 익숙해지고 노하우가 생겨 할만해집니다. 아이가 커서 훈육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육아의 세상이 펼쳐집니다. 시기마다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규칙과 습관이 있습니다. 밥 스스로 먹기, 용변 처리하기, 옷 입기, 씻기, 정리하기 등 엄마, 아빠가 해주던 일을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습관이 되도록 지속적으로 여러 번 훈육해야 하죠.
그 과정에서 아이의 반발은 어마어마합니다. 편하게 다 해주던 일을 본인이 직접 해야 하니 얼마나 하기 싫겠습니까. 스스로 하는 것 외에도 사회의 규칙과 예절을 가르쳐야 합니다. 거짓말하지 않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 어른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기 등 가르쳐야 할 것 투성입니다.
저는 육체적 육아보다 정신적 육아가 더 힘듭니다. 육체적 육아는 어느 정도 끝이 있는데 정신적 육아는 끝이 안 보이거든요. 특히 일관성 있는 훈육을 통해 아이의 품(성품)을 만들어 주는 게 어렵습니다.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기에 그것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가정에서 받는 존중과 배려만큼 사회에서는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회에 나와 적응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좋은 습관과 함께 바른 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10살과 7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육체적 육아는 어느 정도 끝이 보입니다. 이제는 두 아이가 바른 품을 가질 수 있도록 일관성 있게 훈육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아이의 기질을 존중하고 사랑도 듬뿍 주겠지만 잘못한 일에는 단호한 훈육으로 대해야하겠죠. 옳고 그름을 판단해 바르게 행동하고 사람 사이의 예절을 지키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열심히 품을 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따뜻한 품에서 아이를 사랑해 주고, 엄마의 품을 들여서 바른 품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