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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있는 그녀 Aug 08. 2024

[엄마의 단어] 밥



:끼니로 먹는 음식







사회초년생 시절 엄마와 함께 재밌게 보던 드라마가 있다. 김혜자 배우 주연의 <엄마가 뿔났다>다.


김혜자 배우님이 맡은 역할은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열심히 살아온 '한자'라는 인물다. 가족에 대한 헌신과 희생으로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 삶에 지쳐 1년간의 휴가를 요구.


그 당시 미혼이었던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극 중 '한자'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았고 조금 과장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엄청 공감하면서 보는 게 아닌가. 눈물 뚝뚝 흘려가면서.





정말 단 1년 동안이라도 다 놓고 나가

아침엔 무슨 국을 끓일까

저녁엔 뭐 해 먹을까 그런 거 안 하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저 좀 쉬고 싶어요.

                                            <극 중 '한자'의 대사>    




엄마는 요리를 잘하는 분이셨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피자며 야채튀김이며 온갖 간식을 손수 만들어주셨습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엄마표 반찬과 더불어 푸짐한 밥상이 떠오릅니다.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자주 했던 말은 다 밥과 관련 있었습니다.

"엄마, 배고파. 밥 주세요."

"뭐 먹을 거 없어요?"

자식이 배고프다 하면 엄마는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제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한 상 차려주셨습니다. 그게 너무 당연했던 일상이었습니다.


항상 일 다니느라 바빴던 엄마였지만 음식에는 진심이셨습니다. 자식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밥을 차려주고 노력하셨습니다. 화목하고 안정적인 가정이 아니었지만 엄마의 따뜻한 밥이 있었기에 어린 시절이 꽤 좋게 기억됩니다. 의 힘이었을까요?


마가 되고 나'한자'와 친정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존재는 밥에 매이게 되더군요. 나는 한 끼 굶어도 되나 아이들은 아니었습니다. 끼니마다 알람처럼 배고프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치우다 보면 뭐 하는 것도 없이 하루가 지나갑니다.  쉬려고 하면 끼니가 돌아오고 뭘 해먹일까 고민하는 게 일이었죠. 내 몸이 아파도 끼니를 챙기려고 일어나는 모습이 친정 엄마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 고민을 '한자'와 똑같이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면 살림 야무지게 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데도 남편의 도시락을 챙기는 사람도 있고, 베란다에 미니 정원을 꾸미고 정갈하게 집을 관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가족의 밥만 겨우 챙기 있는데 그럼 사람들을 볼 때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따라 하고 싶어도 따라 할 수도 없습니다. "우와!" 하며 실컷 보다가 결론은 "난 못해."로 끝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았는지 그런 영상을 본 뒤에는 아이들을 위해 고기도 삶고 나물 반찬도 하려고 합니다. 한 며칠 건강하게 먹이려고 노력하다가 일상에 지쳐 피곤해지면 다시 해이해집니다. 배달음식을 시켜 한 끼를 때우기도 하고 냉동식품으로 간단히 차려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또 가족을 위해 잘 해먹이려고 노력하고 다시 해이해지고 다시 노력하고. 무한 반복을 하고 있네요. 밥 한 끼 대충 먹여도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스스로 채우는 족쇄처럼 놓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애써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맛있는 것 없다고 투정 부렸던 젊은 시절의 내가 오릅니다. 엄마가 손수 지어준 따뜻한 밥 한 끼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압니다. 가족을 위해 애써주셨던 엄마의 노력이자 사랑이었죠. 이제는 그 노력을 엄마가 된 제가 하고 있습니다.


엄마처럼 유튜버처럼은 못하더라도 나답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족들의 밥을 차리려고 합니다. 가끔 반찬가게와 배달음식을 애용하며 족쇄도 좀 풀어가면서요.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식사시간이니까요.




: 스스로 채우는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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