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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감있는 그녀 Sep 04. 2024

[엄마의 단어] 취향

취향

: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저는 키가 작은 편입니다. 그래서 20대 시절에는 하이힐을 즐겨신었죠. 길고 치렁치렁한 치마보다는 짧은 치마를 주로 입었고 슬림한 H라인의 원피스를 참 좋아했습니다.



신발장을 열 때면 몇 년째 신지 못하고 있는 하이힐들이 저를 애처롭게 바라봅니다. 언제 신어 줄 거냐며 날씬한 자태를 저에게 뽐냅니다. 거울 앞에서 신어보면 키도 커 보이고 다리도 늘씬해 보이는 게 내 모습이 참 예뻐 보입니다.



그 상태로 나가고 싶지만 하이힐을 벗어 신발장에 넣, 운동화나 크록스를 꺼내 신습니다. 아이와 함께 외출하기에 하이힐은 아주 불편한 신발이니까요.

운동화도 좋지만 크록스가 최고입니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편하고 막 신기 좋은 신발입니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바닷가나 계곡에서 딱이기에 하나 있으면 전천후로 용 가능합니다.



아이낳고 키우면서 발이 불편한 신발은 결국 정리하게 됩니다. 아이를 언제 안을지 모르니 굽이 낮고 오래 신어도 발이 편한 신발만 찾게 되지요.

짧은 티셔츠나 치마 불편해서 손이 잘 안 갑니다. 아이 손잡으랴 넘어진 아이 잡아주랴 계속 허리를 굽히게 되니까요. 아이 낳고 두툼해진 허리를 감춰줄 긴 티셔츠에 손이 자주 갑니다. 치마보다는 바지를 입게 되는 건 두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거고요.



영유아 시절에는 털이 보송보송한 니트류 입기 어렵습니다. 수시로 아이를 안아줘야 하는 시기라 옷에 침이 묻기도 하고, 아이 입으로 털이 들어가게 됩니다. 피부가 예민한 아이는 엄마 옷 재질에 따라서 두드러기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기 피부에도 괜찮고 토하면 쉽게 빨 수 있는 면 위주로 옷을 입게 죠.



새 옷을 입어도 금방 헌 옷이 됩니다. 아이가 옷을 어찌나 잡아당기는지 목부분이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침도 묻고 분유도 묻고 아이가 자기 손에 묻은 거 엄마 옷에 닦고 비싼 옷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 아이에게 공격당할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이게 또 입다 보면 편한 게 좋긴 합니다. 짧은 티셔츠와 치마를 입으면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으면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엄마 삶에서 편한 옷과 신발은 취향의 문제이기보다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적응된 부분 같습니다. 아이가 큰 지금도 고가의 셔츠는 부담스럽고 관리가 어려운 니트류도 잘 안 사게 됩니다. 엄마의 삶을 살다 보니 관리가 쉽고 편한 스타일로 옷 취향이 바뀌 되었네요.





소주를 좋아했던 저의 최애 안주는 곱창볶음과 닭발이었습니다. 매콤한 음식과 알싸한 소주 한잔이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죠. 술을 많이 마셔도 얼굴에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이 저였습니다. 주당까지는 아니었지만 술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술자리도 즐겨했습니다.



임신이 되면 딱 끊게 되는 게 바로 술입니다. 수유기간에도 금주를 하다 보니 몇 년간 술을 마시지 않게 되더군요. 수유하다 보면 시원한 맥주 한 캔이 그립긴 합니다. 하지만 전처럼 소주를 진하게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술을 마신 후의 숙취가 힘들기도 하고, 다음 날 편히 쉬지 못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기에 술은 점점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조금만 마셔도 금방 취하는 몸이 돼버렸네요.



술과 마찬가지로 임신과 수유 간에 매운 음식을 잘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매운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기도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니 아이들 위주로 반찬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제육볶음을 만든다 하면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간장양념으로 만들게 되는 거죠.

주 먹다 보니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어느새 취향이 되었습니다. 이 탈 나는 매운 음식보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간장양념이 좋아졌습니다.



패션 취향도 음식 취향도 젊은 시절과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이힐에서 크록스로, 짧은 치마에서 긴 티셔츠에 바지로, 매콤한 맛보다는 간장맛으로, 엄마 역할에 맞게 제 취향도 변해갔습니다.



엄마라는 이 정체성은 정말 강한 것 같습니다. 내 삶의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향마저도 엄마화 돼가네요. 런데 이게 또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쪽으로 바뀌는 거니까요.


그래도 이가 들어감에 따라 센스 있고 우아한 스타일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라논나 장명숙할머니처럼요.




취향

: 엄마화스럽게 

: 그게 또 나쁘지만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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