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일을 깎을 때 이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저희 집 아이들은 과일을 참 좋아합니다. 특히 둘째 아이는 과일 욕심이 많아 가족과 함께 먹는 과일 접시를 독차지하려고 하죠. 그래서 식비 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게 과일 값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복숭아만 20박스 넘게 사 먹은 것 같습니다.
과일 값이 점점 비싸져 넉넉히 사 먹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온 가족이 과일킬러라 여러 과일을 부지런히 사 먹습니다.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복숭아뿐만 아니라 몸에 좋은 사과는 사계절 내내 떨어지지 않고 사둡니다.
사실 과일은 당이 많고, 밥을 먹은 후 바로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습관이 되어서인지 쉽게 고쳐지지가 않네요. 식사 후 상큼하게 먹는 과일이 입가심이 돼주고, 식사를 마무리하는 느낌이 드니까요.
어린 시절, 밥을 다 먹고 난 후 엄마가 정갈하게 깎아 내온 과일 접시가 떠오릅니다. 우리를 위해 밥상을 치우자마자 쉬지 않고 바로 과일을 깎았던 엄마의 뒷모습도 같이 떠오릅니다.
철없이 엄마 몫도 남겨놓지 않고 동생이랑 다 먹어치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 생각한다고 포크로 콕 찍어 엄마 입으로 가져다주면 "엄마 아까 먹었어."라고 이야기하셨죠. '아! 깎으면서 좀 드셨나 보다.'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사과나 배, 참외, 복숭아 등 과일의 맛있는 과육을 먹기 위해서는 껍질을 깎아야 합니다. 결혼 후 누가 깎아 주지 않고 내가 해야만 과일을 먹을 수 있을 때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났습니다. 정성스럽게 예쁘게 깎아 주었던 엄마의 솜씨도, 자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흔쾌히 깎아주던 부지런한 모습도 말이죠.
스스로 깎아 먹게 된 후로 과일 먹는 일이 귀찮아졌습니다. 물러진 복숭아를 깎으면 복숭아즙으로 손이 흥건해지고, 수박을 자르고 난 후의 뒤처리도 하기 싫었습니다.초파리도 잘 생기고, 음식물 쓰레기도 더 자주 버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먹기 쉬운 방울토마토나 귤, 바나나를 자주 사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되니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과일 껍질을 깎고 먹기 좋게 수박을 썰어 놓게 되네요. 오후에 아이가 간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출근을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 사과를 깎기도 하고요. 나 먹을 때는 귀찮아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부지런을 떨게 됩니다.
'깡치'라는 말을 아시나요? 제 고향에서는 과일의 가운데 심을 깡치라고 부릅니다. 과일을 깎다 보면 깡치에 붙어 있는 과육이 아까워 입으로 베어 먹게 됩니다. 등갈비 먹듯이 야무지게 뜯어먹죠. 아이들을 위한 맛있는 부분은 접시에 두고 쟁반 위 깡치를 뜯고 있는 저를 볼 때면' 아이고. 나도 부모가 다 되었네.'라는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엄마도 저처럼과일을 깎으면서 이 깡치를 드셨을까요. 이미 먹었다고 이야기하신 게 깡치를 뜯은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해집니다. 자식에게 맛있고 좋은 것을 양보하는 엄마의 마음을 엄마가 되어 보니 알게 됩니다.
나 또한 우리 아이에게 좋은 것, 맛있는 것 듬뿍 주고 싶습니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