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들과의 대화가 낯설어졌다. 결혼, 육아, 시댁.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언어처럼 들렸다. 대화 속에서 나는 듣는 사람으로만 남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짧은 대답을 흘리며 적당히 맞췄을 뿐이었다.
나는 미혼이다. 남편도, 시댁도, 아이도 없다. 친구들이 영어 유치원의 경쟁률을 걱정하거나 시댁과의 갈등을 털어놓을 때, 나는 침묵했다. 그들의 대화에선 내 자리가 없었다. 처음엔 서운했다. 예전에는 같은 언어로 웃고 떠들었는데, 이제는 그 소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멀어진 건 우리가 아니라, 우리가 걷는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익숙했던 풍경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고장난 나침반 같은 기분이었다. 방향은 있었지만, 바늘은 그저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되돌아가려 했지만, 과거는 이미 희미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가만히 멈춰서 바라보니, 그들의 세계에도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무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가족과의 관계를 조율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무게로 가득했다. 그들의 길은 단단하지 않았다. 부서질 듯 아슬아슬했고, 때로는 너무 가팔라 보였다. 나는 그 무게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무게를 견디는 그들을 존중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은 또 다른 세계였다.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졌고, 비슷한 고민에 공감했다. 대화는 마치 부드러운 물결처럼 흘렀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자유로웠다. 서로의 무게를 비교하거나 가늠하지 않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시절연인’이라 부른다. 같은 계절을 함께 건너는 사람들.
그럼에도 멀어진 친구들의 기억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대화는 낯설어졌어도, 어린 시절 함께 웃고 떠들던 순간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 추억은 오래된 편지 같다. 누렇게 바랜 종이는 힘없이 접혀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여전히 내 마음을 두드린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 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은 여전히 같았다. 멀어진 시간도, 엇갈린 대화도 상관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떠올리며,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