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친구들과의 대화가 어색해졌다. 아니, 솔직히 말해 이제는 그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힘들다.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대화의 주제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엔 연애나 드라마, 핫플레이스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제는 영어 유치원, 국제학교, 시댁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 대화 속에서 나는 점점 말이 없어졌다.
나는 미혼이다. 남편도 없고, 시댁도 없으며, 아기도 없다. 친구들이 유치원이나 시댁 이야기를 할 때, 그저 웃으며 듣는 것 외에 해줄 말이 없다. 처음엔 서운했다. 몇 시간씩 붙어 앉아 사소한 이야기로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었는데, 이렇게 생소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공통의 관심사가 사라지자, 우리는 어느새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대화가 힘들어졌고, 마치 나만 다른 세계에 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고단함은 느껴졌다. 유치원 문제나 시댁 문제 같은 이야기들이 낯설고 멀게만 들렸지만, 그 안에 담긴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이를 돌보고, 시댁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그들의 일상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모든 순간을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갔다.
처음엔 친구들이 나와 너무 다른 길을 걷는다는 사실이 외롭고 두렵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들의 변화된 삶을 수용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같은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반면, 사회생활에서 알게 된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는 달랐다. 우리는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고, 일과 취미, 삶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유쾌했고, 주제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시절연인’이라는 말이 있다. 특정 시기에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깊이 교류하는 사람들. 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바로 그랬다. 우리는 자주 만나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며 같은 시기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은 새로운 친구들과의 관계가 오래된 친구들보다 더 편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고민이 비슷하니 대화가 막힘없이 흘렀고,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학창시절부터 이어온 친구와의 관계는 여전히 특별하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여전히 재미있다. 어릴 때 함께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할 때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웃음이 터진다. 수십 번 떠올린 추억에도 여전히 웃고 즐긴다. 오랜 친구와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관계가 추억 속에 머물러 있으며, 그 추억이 우리를 단단히 묶어준다.
나는 새로운 인연과 오래된 인연 사이에서 나를 찾아가고 있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대화는 나를 더 유연하게 해주고, 오래된 친구들과의 관계는 나를 더 따뜻하게 해준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여전히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며 살아간다.
삶은 항상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대화의 주제가 변했듯이, 나 역시 나의 길을 걸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 각자의 길에서, 우리는 여전히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신세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