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이메일을 확인한다. 그렇게 이메일을 확인하며 쇼팽의 Nocturne in E-flat Major, Op. 9 No. 2를 재생한다.
쇼팽의 녹턴은 마치 창문을 여는 것 같다. 정적이 가득한 방 안으로 선율이 스며들고, 첫 음이 공기를 가른다. 처음엔 가볍다. 부드럽다. 하지만 곧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얽혀 있던 생각들이 음악에 맞춰 하나씩 풀려나가는 기분이 든다.
이메일로는 현실과 연결되지만, 쇼팽의 음악은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 이 대비 속에서 나의 하루가 비로소 완성된다.
이상하게 녹턴은 들을 때마다 다르게 들린다. 어떤 날은 위로가 되고, 또 어떤 날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녹턴에는 슬픔과 아름다움이 나란히 존재한다. 그 두 감정은 내가 글을 쓸 때 느끼는 것과 닮아 있다. 선율에 맞춰 글 속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펼치는 것만 같다.
글을 쓴다는 건 섬세하면서도 고통스럽다. 흔들리며 쓰고, 흔들리면서도 완성해 간다.
아침을 여는 이 작은 행동은 나를 움직인다.
이메일 확인과 쇼팽의 음악은 전혀 다른 색깔을 가졌지만, 이 둘이 어우러져 나의 하루를 만든다. 분주한 세상 속에서 피아노의 선율은 나를 잠시 멈추게 한다.
멈춰 선 그 순간, 나는 다시 쓰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살아간다.
음악이 끝나면 현실이 다시 나를 부른다. 하지만 피아노 선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멈춘 것은 소리일 뿐, 음악은 내 안에서 잔잔히 흘러가며 하루를 적신다. 그렇게 음악이 글이 되고, 나의 하루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