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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Sep 26. 2024

힘듦 등급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는 말 대신

힘듦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가. 어렵게 꺼낸 나의 이야기에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보다 힘든 사람들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이 말이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을까. 하지만 그 말은 마음속에 상처를 남긴다. 힘듦은 상대적인 걸까, 아니면 절대적인 걸까.


사실, 우리는 안다. 힘듦에는 등급이 없다는 걸. 그런데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힘듦 등급표'라도 있다면 어땠을까. 고통을 쉽게 재단하려 드는 일도 줄어들고, 누구나 그 무게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등급표가 있다면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
너의 힘듦은 B등급이야. 72시간 동안 마음껏 우울해도 돼. 울어도 괜찮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 후엔 천천히 일어나면 돼.


조금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힘듦이 인정받는다면 어쩐지 위안이 될 것 같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이런 등급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각자의 고통은 남이 재단할 수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 힘듦은 절대적이다. 나만 아는 무게, 나만 느끼는 깊이. 그 누구도 그 아픔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이 말은 상대의 고통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그보다는 많이 힘들었지, 라는 한마디가 더 위로가 된다. 어깨를 조용히 토닥여주는 작은 손길이 오히려 더 큰 힘이 된다.


힘듦의 무게는 각기 다르다. 내가 느끼는 무게는 나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는 법도 나만의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의 힘듦을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 모른다.


힘듦의 무게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게를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조금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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