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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연 Sep 27. 2024

다정한 슬럼프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주는 선물, 쉼표

슬럼프는 왜 나를 찾아왔을까. 내가 뭐라고 슬럼프가 왔는지조차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가 말했다.
네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야.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슬럼프가 올 수 없어.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맞다. 나는 진심으로 달려왔다. 처음엔 평범한 속도로 걷기 시작했지만, 어느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긴 마라톤처럼, 앞만 보며 목표를 향해 내달렸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잠깐 숨을 고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길이 끊긴 것처럼 느껴지는 벽 앞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슬럼프는 그저 실력이 주춤한 상태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정말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룬 사람인가?
내가 뭐라고 슬럼프를 말할 자격이 있다고 할까?


그 질문은 점점 깊어졌다.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은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었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초조함,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페이지를 넘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글을 쓰지 못하는 순간, 나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림도 그릴 수 없었다. 낙서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연필을 드는 것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그때 친구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네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야.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슬럼프가 올 수 없어.


슬럼프는 열심히 살아온 길 위에 찍히는 쉼표일지도 모른다. 그 쉼표가 다음 문장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곧 봄이 온다. 모든 것이 깨어나는 계절에 나도 다시 깨어날 것이다. 길 위에 서서 초록불이 켜지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다른 길을 찾아 걷기로 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나는 여전히 두 다리가 있고, 살아 있는 열정이 있다.


슬럼프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한 다정한 쉼표일지도 모른다. 좌절은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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