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권력이 우리를 속이는 방식에 대하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호러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꽤나 통쾌합니다. 매너 농장의 동물들이 술주정뱅이 주인 존스를 몰아내고 자기들만의 ‘동물농장’을 세우죠. 그들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고 외치며, 인간에게 착취당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꿈꿉니다. 노동은 힘들어도 내 것을 한다는 기쁨이 있었고, 모두가 배부르진 않아도 자유로웠으니까요. 하지만 지능이 높은 돼지들이 지도자가 되면서, 이 순수한 혁명은 서서히 그리고 아주 교묘하게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가 아는 그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입니다.
혁명을 일으켰던 돼지들이 어느새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침대에서 자고, 인간과 카드놀이를 합니다. 창문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동물들은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더 이상 구별할 수 없게 되죠.
저는 이 장면이 묻는 질문이 아주 서늘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토록 경멸하던 그 모습이, 지금 거울 속에 있지는 않나요.”
이 소설은 독재나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을 건드립니다. 바로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는 말의 어두운 이면입니다. 권력이나 지위가 생기면, 사람은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고 또 놀랍도록 빠르게 자신을 합리화하니까요.
처음 반란을 일으킬 때 동물들이 세운 계명은 명확했습니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하지만 돼지들이 권력을 잡자 계명은 슬그머니 바뀝니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시트를 깔고 자면 안 된다.”
나중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대원칙마저 이렇게 바뀌죠.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우리는 이 돼지들을 보며 비웃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도 나폴레옹이라는 돼지가 살고 있거든요.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신입 시절, 저는 소위 ‘꼰대’라 불리는 상사들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권위적이고, 자기 말만 맞고, 후배들의 고충을 “나 때는 더 심했어”라는 말로 퉁치는 그 태도를 경멸했죠. 저는 다짐했습니다. 나는 절대로 저런 선배가 되지 말아야지.
그런데 시간이 흘러 저에게도 후배가 생기고 작은 권한이 주어졌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회의 시간에 후배가 제 의견에 반대하자, 저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지더군요.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 ‘네가 뭘 알아?’ 하는 마음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합리화했죠.
‘이건 꼰대 짓이 아니야. 효율을 위한 리더십이야. 내 경험상 이게 맞으니까.’
그날 밤, 문득 섬뜩해졌습니다. 제가 혐오했던 상사들의 논리가 제 입에서 고스란히 나오고 있었으니까요.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던 원칙을 “시트만 안 깔면 괜찮아”라고 바꾸던 돼지들과 제가 대체 뭐가 다른가 싶더군요.
우리가 괴물이 되지 않는 건, 우리가 착해서가 아니라 아직 괴물이 될 만큼의 힘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주 작은 완장이라도 차는 순간, 인간은 본능적으로 특권을 찾고 자신에게만 관대해지니까요.
《동물농장》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악을 물리쳤다고 해서 선이 되는 건 아니라고요.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우리가 몰아낸 그 자리에 앉아 똑같은 짓을 하게 된다고요.
소설 속에 나오는 말처럼 ‘가장 위험한 적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내가 힘들 땐 공정을 외치다가도, 내가 편해질 땐 특혜를 당연하게 여기는 그 이중적인 마음. 그 마음을 경계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도 두 발로 서서 걷는 돼지가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 얼굴에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누군가의 표정이 묻어 있지는 않은지. 내가 만든 원칙을 나에게 유리하게 조금씩 고쳐 쓰고 있지는 않은지.
《동물농장》의 마지막에서 인간과 돼지는 더 이상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 장면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그 차이를 알아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졌을 때 어떤 얼굴을 하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이 모든 걸 가르는 건 신념이나 도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 그리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그게 사라지는 순간, 우리 역시 끔찍하게도 이미 창문 안쪽에 서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s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