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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나비의 노트

by 토브


어제는
길을 걷다, 꽃을 만났다.
누가 심었는지도 모를 작은 들꽃이었는데
노란 꽃잎이 햇빛을 한껏 머금은 채
아스팔트 틈에서 피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냥 지나쳐도 되는 꽃이었는데,
괜히 마음이 울컥해져서
한참을 서성였다.

‘너도 피고 싶었구나…’
꽃에게 그렇게 말을 건넸다.
마치, 나 자신에게 하듯이.



오늘 아침엔 커피를 내리며
나도 모르게 감사 인사를 중얼거렸다.

“향기 좋다… 고마워.”

커피에 인사를 하는 나는,
조금 웃기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 말이 정말 필요했다.

묵직했던 마음에
향기 하나가 닿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살아나는구나 싶었다.
말 못하고 묻어두던 것들이
조금씩 녹아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출근길에 현관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걸 보았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열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고,
다시 문을 닫고 나가는 그 짧은 순간.

나는 괜히 가슴이 미어져
주방에서 접시를 닦다가 눈물이 났다.
그가 들고 나간 가방보다
더 무거운 걸,
그 어깨 위에 얹어놓고 살아왔던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무게를 짐작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더 미안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어디에든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내겐 가장 중요한 이야기니까.

어제는 카페에서
은혜 언니가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작고 낡은 책 한 권과, 펜 한 자루.

“우리… 다시 써보자.”
그 한마디에
내 안의 감정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밤이 깊은 시간,
노트를 펼쳤다.

종이 위에 펜촉이 닿는 순간,
마음속 무언가가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나의 마음이 다시 말을 건다.”

그 문장을 쓰며
참 오래 참았던 눈물을 조용히 흘렸다.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가장 정확히 느끼는 순간은
글을 쓸 때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나는 요즘
걸음을 천천히 걷는다.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향기로운 커피에도,
무심코 핀 들꽃에도,
남편의 굽은 어깨에도
가끔은 숨죽여 울면서도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글을 쓴다.

감정을,
삶을,
사랑을 담아서.



그날, 우리의 테이블 위엔
커피 두 잔, 따끈한 샌드위치,
그리고 필사한 문장들이 놓여 있었다.

내가 머문 문장은 이것이었다.

“작은 것에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이
작은 것에도 다시 살아나는 길이다.”

나는 그 문장을 가만히 접어,
내 마음속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기도하듯 속삭였다.

“이 감정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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