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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담요의 드로잉북

by 토브



사람들은 내가 조용하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정확한 말도 아니다.

나는 늘 마음속에서 시끄러운 사람이다.
호기심이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언제나 마음속에서 수많은 질문과 생각들이
뛰놀며 북적대고 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정확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진 것도,
이 마음속의 북적임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한 가지 질문이 나를 괴롭히곤 했다.

'이 이야기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한 걸까?'
'다르게 전개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함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나는 내 마음속에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지웠다.




글쓰기 모임을 다시 시작한 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라면 단 한 줄도 쉽게 내보이지 못했지만,
그 안에 상상과 허구를 더하면
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 이야기는 소설이 되었다.

모임에서 우리는 글을 나눴다.
나연이는 감정을, 순미는 일상을, 은혜는 질문을 썼다.

내 차례가 되면, 나는 늘 작아졌다.
그녀들의 글이 너무나 투명하고 솔직해서
나의 글이 조금은 부족한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묘하게 두근거렸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나의 호기심과 열정은 활짝 날개를 펴고
이곳저곳 자유롭게 날아다닐 테니까.



어느 밤, 나는 오래된 드로잉북을 꺼냈다.
연필로 빠르게 적은 이야기의 조각들,
언젠가 소설로 만들어 보고 싶은 장면들이
그곳에 가득했다.

연필을 들어 작은 이야기를 하나 그리듯 적었다.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수백 개의 질문을 생각했고,
그 질문마다 상상의 답을 덧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질문들이 모두 살아나
그녀를 찾아왔다.
‘이제 우리를 써줘,’ 하고 말이다."

거기까지 적고 나서 가만히 웃었다.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아니, 어쩌면 이게 정확히 내 이야기라서.

나는 질문을 던지고 상상으로 대답하며 살아왔다.
현실에선 조용히 웃고,
내면에선 수없이 모험을 떠났다.

소설이란 건 어쩌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숨기기 위한
가장 솔직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글쓰기 모임 날,
나는 처음으로 소설의 도입부를 읽기로 했다.
카페의 커다란 테이블,
따뜻한 커피 향과 친구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천천히 문장을 펼쳤다.

“어떤 여자가 있었어.
그녀는 아주 많은 질문과 호기심을 가지고 살았지.
그녀는 현실보다 머릿속에서 더 활기차게 살았어.
그리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수많은 질문들이 그녀의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

내 말을 듣던 나연이가 흥미로운 눈으로 물었다.

“언니, 이거 언니 얘기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나였을 수도 있지.”

은혜와 순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상은 언니, 진짜 궁금해. 이 이야기 다음엔 뭐가 나와?”
“그러니까. 빨리 들려줘 봐.”

모두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한다는 사실에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마음이 묘하게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내 마음속의 질문들은 별처럼 무수히 많았고,
그 질문들이 별자리처럼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었다.

어쩌면 내 이야기는
늘 나와 함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저 펜을 들어
조용히 그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소설가가 되어가는 중이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으로,
질문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사람으로.




다음 이야기는 어떤 상상으로 채울까,

나는 오늘도 조용히 미소 짓는다.

내 마음속, 가장 북적이는 이야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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