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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숲의 자리

by 토브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는다.
"글쓰기를 가르치는데,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냐"고.

그때마다 나는 잠시 웃으며 대답을 고른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글을 잘 쓰는 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 역시 여전히 그 길을 찾아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대답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대화를 잘 나누는 사람이라는 것을.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도 처음엔 말이 없고,
눈치를 보고,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그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저 옆에 앉아 작은 이야기를 건넨다.

"어제 가장 기뻤던 일은 뭐였어?"
"요즘 어떤 노래를 자주 들어?"
"누군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러면 아이들의 눈빛이 조금씩 열리고
말들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비로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글이란 그런 것이다.
나를 알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도 따뜻한 방식.
내가 가진 언어로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니까.




그런데 내 자신에게는 그런 편안한 과정이 쉽지 않다.
돌아보면 내 삶의 많은 순간이 그랬다.
남들을 돕는 일에는 자신 있으면서,
정작 내 안의 이야기는 늘 뒤로 미뤄뒀다.

'나중에 해도 되겠지.
지금은 바쁘니까.
지금은 다른 사람이 먼저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최근 다시 시작한 글쓰기 모임도 마찬가지였다.
상은 언니, 순미, 나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여전히 나는 모임의 중심을 잡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워크북을 준비하고, 필사할 책을 고르고, 글쓰기 주제를 제안하고,
언제나처럼 흐름을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엔 문득 허전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나는 또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놓친 채 살아가는 건 아닐까.




어느 날 밤, 오래된 노트를 꺼내 펼쳤다.
그 노트의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 문장을 쓰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어쩌면 나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듣기만 하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말은 잘 듣지만, 내 이야기는 무시하고 지나쳤던 시간들.
그렇게 스스로의 마음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날들.

이제는 내게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쯤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노트 위에 천천히 문장을 적기 시작했다.

"나에게 말 걸어줄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했다.
가장 오랫동안 무시했던 사람,
가장 소홀히 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먹먹해졌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린 말인지 알기에,
얼마나 오래 스스로에게 미안했던 말인지 알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 날, 다시 순미의 카페에서 우리는 만났다.
늘 앉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두가 각자의 글을 펼쳐놓았다.

"오늘은 은혜 언니부터 읽어줄래?" 나연이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나의 내밀한 고백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나는 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내 이야기를 잊고 살았던 것 같아.
이제는 내게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어.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글쓰기인 것 같아."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문장을 마치자 잠깐의 고요가 찾아왔고,
상은 언니가 천천히 내 손 위에 손을 얹어주었다.

"그동안 애썼어, 은혜야."
상은 언니의 한 마디에
무언가가 깊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순미는 말없이 따뜻한 커피를 내게 건넸고,
나연은 조금 젖은 눈빛으로 활짝 웃어줬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모임의 중심에 서 있지 않고,
우리 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조금 더 분명히 알았다.
진정한 글이란 잘 다듬어진 문장이 아니라,
나와 정직하게 마주 앉는 대화라는 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엔 별이 많았다.
나는 하늘을 보며 다시 천천히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오늘도 잘 살았어.'

이 말이 오래도록 내 마음 깊이 남았다.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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