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테이블 위에는 오늘따라 종이들이 많았다. 접힌 자국이 남은 노트, 모서리가 말린 인쇄물 한 장,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프린트, 그리고 조용히 식어가는 커피잔들이 각자의 공간처럼 조용히 놓여 있었다.
오늘은 서로의 글을 나누는 날이었다. 이 모임이 다시 시작된 이후 처음 갖는, 글을 나누는 조용한 잔칫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순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샌드위치를 만든다. 그건 단지 빵 사이에 재료를 넣는 일 같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하루를 다정하게 감싸는 일이다.
매일 아침, 빵을 고른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이어야 한다. 재료와의 조화를 생각하며 신선한 채소와 치즈, 햄을 손질한다. 소스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만든다. 가끔은 달콤하게, 때로는 톡 쏘게.
손님들마다 취향이 다르다. 단골 손님 중엔 언제나 토마토를 빼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이는 빵은 꼭 호밀로 바꿔달라 한다. 나는 그 작은 요청 속에 숨어 있는 그들의 삶을 상상한다.
바쁜 하루를 앞둔 이의 긴장감, 아이와 나눠 먹을 생각에 고른 메뉴, 혼자 조용히 앉아 한 입 한 입 천천히 씹는 이.
그 모두를 상상하며 나는 샌드위치를 만든다. 음식을 만든다는 건 몸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나는 빵을 굽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에는 내 마음이 담겨 있다. 누군가 내 샌드위치를 먹고 “오늘은 좀 괜찮은 하루였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조용히 박수가 흘렀고, 이어서 은혜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펼쳤다.
우리는 종종 '안다'고 말한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자주 본다는 이유로. 하지만 나는 그 익숙함 안에 숨어 있는 침묵이 더 궁금하다.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느낀다. '글을 잘 쓰는 아이'란, 말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기 마음을 잘 듣는 아이다.
그래서 나는 질문한다. “오늘 무슨 생각을 했어?” “어떤 기분이었니?” “지금 말하고 싶지 않은 건 뭘까?”
그 질문 앞에서 아이들은 망설이고, 그러다 문득 쓰기 시작한다. 그건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도 그렇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쓰는가. 내 글은 어디로 향하는가.
말은 흘러가지만, 글은 머문다. 흔적이 되고, 공간이 된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누군가에게 그 글이 작은 벤치가 되어 잠시 앉아 숨을 돌리고 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은혜의 말이 끝나자 상은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나는 장면을 기억한다. 아주 짧고도 사소한 순간들, 이를테면 버스 정류장에서 누군가가 허공을 바라보던 눈빛, 계단을 오르며 숨을 내쉬던 노인의 손짓.
사람들은 그저 지나치지만, 나는 그 장면들을 오래 붙잡는다. 그리고 상상한다.
그 눈빛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 손은 어떤 기억을 지나왔을까.
그 상상은 나를 이야기 속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간밤에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이상하게 오늘의 빛을 바꿔놓았다고 믿는다. 그는 오래된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고, 그 문장 하나가 마음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 하지만 분명히 품고 있는 이야기.
상상은 내게 허구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나는 그 상상을 꾹꾹 눌러 담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도달할 소설을 쓰고 싶다.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남는 이야기. 바람처럼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앉아 머물 수 있는 이야기.
조용한 박수에 이어 나연이 마지막으로 노트를 펼쳤다.
민들레 씨앗 하나가 바람에 날아가는 걸 보았다. 이른 아침, 비가 그친 골목길에서 그 작고 하얀 씨앗은 어디론가 아주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자주 그렇게 느낀다. 나 자신이, 민들레 씨앗 같다고. 가볍고, 쉽게 흔들리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어디론가 떠밀려 가는 존재.
나는 감정에 쉽게 젖는다. 길가에 핀 들꽃에도 마음이 아리고, 향긋한 커피 향에도 눈물이 날 것 같다. 남편이 말없이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면, 한참을 혼자 앉아 그 뒷모습의 의미를 되짚는다.
그래서 나는 쓴다. 글을 쓰는 건 내게 마음 붙일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감정이 너무 많아 흘러넘칠 때, 그 감정을 흘러가게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다시 모인 것도, 내가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다. 내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따뜻한 눈빛이 있으니까.
나는 여전히 감정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 감정들이 글이 되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하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종이 위에 꺼내 놓았다. 문장들이 사람의 온기를 머금고 조용히 흘렀다.
창밖엔 늦은 해가 내려앉았고, 햇빛이 커피잔 위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말없이 그 빛 속에 앉아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한 권의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