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아미미술관을 다녀와서
(입장료: 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
도시의 고양이를 본 적 있는가? 우리는 그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른다. 생존을 위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갈라야만 하는 그들은,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선택한듯 하다. 그래서 사람을 피해 늘 분주한 걸음으로 뛰어다니며, 차 밑의 공간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서야 잠을 청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동안 정말 특이한 몇몇 놈들 빼고는 길고양이를 가까이에서 보거나 만진적이 없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슬픈 사실이지만 무채색의 아파트만 가득한 삭막한 도시에서 그들이 나를 피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들은 늘 바쁘고, 걱정하며, 경계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어쩌면 도시의 고양이들은 도시의 사람들을 닮아 있다.
이 미술관에도 고양이들이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의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살아간다. 사람을 보고 숨는 일은 없으며, 작지도 크지도 않은 이 미술관을 자신의 집 삼아, 미술관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주인인양 맞아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에게는 소위 도둑고양이들과는 다른 여유가 보인다는 것이다.
미술관에 입장하자 마자 건물 앞 벤치에 떡 하니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고, 혹시 내가 다가가면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고양이는 이런 걱정을 한 내 자신이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는 사람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도도함을 보였다. 이들이 이토록 여유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곳 사람들은 자신을 헤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언가에 쫓겨 살아가는 도시의 고양이들과는 달리 이 곳에는 이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소음이 없다.
고양이가 걱정없이 살아가는 곳. 이것은 다르게 말하면 ‘무해한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곳은 고양이가 아무런 걱정없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고양이가 여유로운 공간이라면 사람에게도 그렇다. 이곳에는 구박할 상사도, 밀린업무도, 과제도 없다. 그저 하얀 타일을 타고 자라나는 넝쿨줄기를 감상하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운동장을 보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기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술작품의 수는 다른 미술관에 비해 적은 편이고, 위치상으로도 찾아가기 쉽지 않다. 더 근사하고 찾아가기 쉬운 미술관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당진이라는 조용한 도시에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았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아이들이 떠나간 시골마을의 학교는 폐교가 되었고, 그 폐교는 미술관으로탈바꿈했다.’라는 스토리일 것이다. 이곳은 폐교가 된 유동초등학교를매입하여 2010년 미술관으로 재정비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곳곳에는 이곳이 초등학교였음을 상기하게 하는 것들이 남아있다. 외벽 타일에 그려진 아이들의 순수함이 돋보이는 그림이라던가, 족히 50년은 그 자리를 지켰으리라 추정되는 낡은 녹색 칠판, 그리고 자그마한 오르간 같은 것들 말이다. 굳이 나이가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초등학교에 대한 향수는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에도 초등학생 시절 음악시간에 선생님의 작은 오르간 연주에 맞춰 다같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 방과후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던 기억은 10년이 흐른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 있으니 말이다. 삶에 지칠 때, 사람에 상처 받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역시 생각없이 뛰놀던 어린시절 아니겠는가. 이곳은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만끽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곳의 미술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작품을 다 보는데 삼십 분정도면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이 점이 아미미술관의 단점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면 조급하지 않게 그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서있을 수 있다. 또한 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존재만으로도 한편의 작품이 되어 준다.
이 날 미술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The flower of desire> 라는 작품이다.두 벽면에 넓게 전시되어 있는 이 그림은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색채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멀리서 봤을 때보다 가까이에서 이 그림을 보았을 때가 더 인상적이었다.내가 그동안 보아 왔던 유화들은 물감이 얇고 균등하게 발려져 있었는데, 물감이 한곳에 뭉쳐있는 듯한 질감이 꽃의 생생함,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는 듯 하였기 때문이다. 정갈하고 단정한 꽃이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정돈되지 않은 것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이 날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이었다. 치덕치덕 칠해진 물감을더 유심히 감상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이비싼 유화를 이렇게 칠해 놨네!” 하셨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조용히 쉬고 싶은 당신을 위한 힐링 미술관>
도시는 정말 시끄럽다. 우리는 시끄러운 알람 소리로 잠을 깨고, 시끄러운 대중교통에 몸을 맡긴 채 등교 혹은 출근을 하며,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도, TV소리,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 알림음과 함께 잠에 들 준비를 한다. 반복되는 일상과 소음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쉬고 싶다면, 이 곳은 좋은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더더욱.
주변에 왜목마을, 삽교호 등 가볼 만한 곳들도 은근히 있으니, 가족끼리 당일치기 여행이나, 커플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추천한다.